실낱 같던 16강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라이프치히 월드컵경기장에서 21일(한국시간) 열린 D조 조별리그 이란과의 3차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36세의 앙골라 골키퍼 주앙 히카로두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3경기를 치르는 동안 온몸을 던져 골문을 막았고, 지친 동료들을 독려했지만 결국 예선탈락으로 월드컵 무대를 퇴장하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골대를 지켜왔지만 히카로두는 월드컵 개막 전까지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전 소속팀인 포르투갈의 모레이렌세가 2004년 재계약을 포기한 후 현재까지 무소속으로 머물러 있을 정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735명 중 소속팀이 없는 선수는 그와 팀 동료인 공격수 아콰, 둘에 불과했다. 93년 프로에 데뷔할 때까지도 그는 낮에는 가업인 목재사업에 열중했고, 축구는 뒷전이었다. 2002년에야 경험 많은 골키퍼를 원했던 앙골라축구협회의 요청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있었지만 그는 늘 벤치 신세였다.
그러나 마지막 노장 투혼을 불사르기라도 하듯 그는 16일 중남미의 강호 멕시코의 파상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무승부를 이끌어 앙골라에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안겼다. 조별 리그 3경기에서 그가 허용한 골은 2골. 앙골라의 공격진이 조금만 분발했다면 그의 선방이 16강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히카로두에게 앙골라는 ‘완벽한 조국’이 아니다. 앙골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포르투갈계. 앙골라가 1975년 독립하고 내전이 닥치면서 그는 다섯 살 때 부모와 함께 고향을 떠나 할아버지의 나라 포르투갈에 정착했다. 프로선수생활도 포르투갈에서만 했고, 대표팀 훈련소집 직전까지 포르투갈에서 12개월 동안 홀로 몸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애국심만은 남달랐다. 그는 멕시코와의 경기직후 “무엇보다 앙골라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줘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란과의 경기 후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좋은 제안이 있어도 다시 축구를 할 것 같지는 않다”며 쓸쓸하게 떠나가는 주앙 히카로두. 그 모습에서 어쩌면 다시는 경기장에서 그의 노장 투혼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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