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전쟁 중이다. 월드컵 축구 국가대항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지금 전쟁의 이름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해 미 육사 졸업식에서 이번 전쟁이 과거의 전쟁과는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과거 미국이 싸웠던 전쟁들과는 다른 전쟁을 하고 있다. 미국은 모든 전선에서 테러리스트와 싸워야 하고, 미국에 대한 위협이 제거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이 전쟁이 전선이 따로 없는 지구 규모의 전쟁이고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부시는 2002년 역시 육사 연설에서 이 전쟁의 가장 큰 특징을 처음 밝혔다.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이다. 테러국가나 집단이 미국에 테러를 가할 가능성이 있으면 선제공격으로 저지한다는 선언이다. 9ㆍ11 테러를 반영한 선제공격 전략은 연설 전 이미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적용됐고 그 뒤 이라크 전쟁에서 다시 실천됐다.
하지만 이라크 새 정부가 들어선 현재도 이라크는 혼란이 계속돼 미국의 출구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5일로 이라크 미군 전사자 수가 2,500명을 넘어섰다. 2003년 3월19일~4월30일의 이라크 침공 때 전사자는 139명인데, 승리 선언 후 점령기간 전사자가 17배에 달한다.
이것도 이번 전쟁에서 유별난 양상이다. 전쟁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다.
이런 어려움을 의식한 부시는 올해 육사 연설에서 냉전 초기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끄집어냈다. "역사는 내 임기에 냉전이 시작됐고, 그 8년 동안 우리가 승리의 길을 닦았다고 말할 것이다"라는 트루먼의 연설을 인용했다. 트루먼처럼 불퇴전의 의지로 전쟁을 수행해 미래의 최종적 승리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부시는 트루먼의 한국전쟁 개입도 길게 말했다. "1950년 여름 북한군이 남한에 밀고 내려와 냉전의 첫 직접 군사충돌이 시작됐고, 트루먼은 공산세력의 침략에 단호하게 맞섰다. 한국전쟁에서 많은 실패와 실책이 있었고 5만 4,000여명의 미군이 희생됐지만, 공산군은 38도선 이북으로 물러났다. 한국의 자유는 지켜졌다."
한국전쟁도 그 전의 전쟁과는 다른 유별난 전쟁이었다. 소련의 허락과 지원을 얻은 북한의 침략전쟁에 한반도 좌우익의 내전 성격이 더해졌고 후반은 미국과 중국의 직접 대결이었던 전쟁은 참가국 모두에게 참혹한 희생을 안겨주었다.
한국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에서 유사성을 찾으려는 부시에게 동의하든 하지 않든 테러와의 전쟁은 한국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지구 규모의 전선에 대응하려는 미국은 미군 재편의 일환으로 주한 미군의 역외 출동을 가능하게 만들려고 한다. 한국군은 이라크 점령정책에도 투입돼 있다.
무엇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적 진영인 '악의 축'으로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꼽았다.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를 설득해온 한국의 애타는 노력에는 아랑곳없이 북한은 미사일 발사 위협을 들고 나왔다. 한국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어버렸다.
매일 외신에 쏟아지는 이라크의 폭탄테러와 소탕작전 사진을 고르다가 22일자 한국일보 사회면에 실린 한국전쟁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북한 미사일 보다도 스위스 축구대표팀의 알렉산더 프라이를 더 염려하는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은 고작 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일요일은 한국전쟁 발발 기념일이다. 한국전쟁의 다른 이름은 '잊혀진 전쟁'이다.
신윤석 국제부장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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