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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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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

입력
2006.06.2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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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박지성 선수가 골을 터뜨렸으니 한턱 내겠다는 친구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빛났다. 그런데 비싼 레스토랑의 푹신하고 호사스런 카펫이 아름답기는커녕 털실먼지가 풀썩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은 뭔가.

쇠빗으로 탕탕 털실을 쓸어내리며 카펫을 짜던 모로코 소녀들의 핏기없는 얼굴이 떠올라 그 비싼 음식에도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쇼윈도에 비친 예쁜 가죽구두나 수공예품에서도 어린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길과 지독한 접착제 냄새가 느껴졌다. 최근 모로코에서 열린 유니세프 교육담당자 회의에 다녀온 직후라서 그랬나보다.

● 모로코의 노동하는 아이들

어린이 노동현장을 확인하려고 방문한 곳은 모로코 공예산업의 중심지 페즈. 아침 8시반부터 저녁 7시반까지 카펫공장에서 일하는 14살 소녀 리디아는 굽은 손가락을 펴지 못한다. 다섯살 때부터 온종일 가위를 움켜쥐고 카펫을 짜는 바람에 손가락이 굳어버린 것이다. 걸핏하면 야근에 온몸이 뻣뻣해지도록 일해서 매주 받는 돈은 3달러 남짓. 돈을 더 버는 작업반장이 되어 남동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리디아의 소망이다.

다음 찾아간 곳은 독한 접착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구두공장. 햇빛도 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비좁은 실내에서 12명의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들이 가죽조각에 풀칠하거나 박음질을 하고 있었다. 9살이라는 이캄은 “처음에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손을 다치기 일쑤였지만 이젠 익숙해졌다”고 했다.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매주 5달러쯤 버는 돈으로 온가족의 먹거리를 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아쉬운 표정.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불까지 지펴놓고 일하는 주물공장이나 도자기공장에도 입을 꼭 다문 채 일하는 열살 안팎의 어린이들이 많았다. 신나게 뛰놀며 배워야 할 나이에 고된 노동에 내몰린 어린이들만 보았더라면 모로코를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착잡하고 우울했으랴. 다행스럽게도 유니세프 모로코사무소는 어린이들에게 배우고 놀 권리를 찾아주면서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야심찬 사업을 펴고 있었다.

12세 이하 어린이들이 일터에서 벗어나 학교에 다니도록 책가방과 학용품 및 학비를 지원한다. 어린이 한 명이 학교에 다니도록 뒷바라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연간 100달러 정도. 그런 노력으로 최근 5년 사이에 공장 대신 학교에 다니게 된 페즈 지역 어린이가 600여명이다.

사회복지사의 간곡한 설득과 권유 덕분에 구두공장을 그만두고 지난해부터 학교에 다니게 되어 너무 신난다는 유네스는 초등학교 2학년. 날마다 학교에 오고 싶지만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집에서 동생을 돌봐야 한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유네스의 맑은 눈망울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제2, 제3의 유네스가 꿈을 펼치도록 어떻게 도와주나. 가난과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값싼 노동시장을 떠도는 7~14세 어린이가 모로코에만도 약 60만명, 전세계적으로는 3억명을 헤아린다.

● 월드컵 어린이 캠페인에도 관심을

카사블랑카 라바트 페즈 등 모로코 대도시마다 LG전자의 초대형 텔레비전 광고판이 우뚝 서있다. 푸조나 벤츠 마크가 무색하게 매연을 내뿜으며 꾸물거리는 고물 택시들을 제치고 기아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뿐, 한국의 가난한 누이들이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공장에서 밤샘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불과 반세기만에 한국이 기적처럼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지구촌 이웃들의 도움을 받았던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국제축구연맹과 유니세프는 ‘어린이와 평화를 위해 다함께 나서자’는 캠페인을 펼치기로 약속했건만 온세상의 관심은 축구공에만 쏠린 눈치다. 월드컵에 열광하는 축구팬들에게 ‘어린이 보호 팬’이 되자고 호소할 수는 없을까?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야말로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외치면 누군가 귀기울여 줄까?

김경희ㆍ한국유네스코 세계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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