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꽃이자 자존심으로 여겨온 재정경제부 핵심요직을 거친 인물들이 최근 추잡한 비리에 연루돼 잇달아 구속 또는 체포되고 있다. 충격을 넘어 황망스럽고 서글픈 일이다. 공복(公僕)의 사명감을 누차 강조하던 최고 엘리트층의 도덕성이 고작 이런 정도였느냐는 자괴감이 앞선다. 그들이 공직생활 중 뛰어난 업무능력과 절제있는 자기관리로 선ㆍ후배들의 신망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배신감과 더불어 할 말을 잃게 한다.
당사자들은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단을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기대를 저버린 처신만으로도 비난을 면할 길 없다. 모두가 선망하는 금융정책국장을 2년 이상 지내며 ‘장관 0순위’로 꼽혔던 변양호씨가 외국 투기자본에 맞서는 토종펀드를 만들겠다며 사표를 냈을 때 과천 관가가 아쉬움을 표시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외환위기 때 은행구조조정 특별대책단장과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자산관리공사 사장을 지낸 연원형씨 역시 청렴과 열정이 몸에 밴 사람으로 알려져왔다. 대한생명 감사를 역임한 김유성씨와 펀드대표 우병익씨도 부처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관료의 거울’ 같았던 이들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정도에 유혹돼 현대차 부채탕감 로비나 론스타 부실채권 알선비리에 연루된 것은 본인뿐 아니라 재경부 전체의 수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경부 마피아’를 뜻하는 ‘모피아(mofia)’가 엘리트 관료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순혈주의의 폐쇄성에 기반한 비리사슬을 비웃는 단어로 전락한 까닭이다. 앞의 인물들이 잡혀갈 때마다 재경부 관료들이 “검찰이 뭔가 실수하고 있다”고 오만을 떤 것을 보면 오늘의 사태는 자초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 재경부는 조직의 존폐를 위협하는 ‘리더십의 위기’를 맡고 있다. “지금 재경부에 남은 것은 부총리라는 타이틀뿐”이라는 자조와 냉소도 내부에 팽배해 있다. 안으로 곪고 밖으로 무시당하는 재경부가 문닫지 않는 방법은 환골탈태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