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이 노래한다. “주여, 영원한 안식(Requiem aeternam)을 주소서.”
테너가 반박한다. “가축 떼처럼 죽은 사람들을 위해 무슨 조종(弔鍾)이 있겠는가? 다만 있다면 소총들의 야만스런 분노의 소리뿐,…그들을 위한 기도도, 종도, 글도 없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의 ‘전쟁 레퀴엠’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이 작품은 반전 음악의 걸작이다. 세 명의 독창자(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각각 100명이 넘는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외에 소년합창단, 10여 명의 작은 오케스트라, 2대의 오르간이 필요한 대작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한 번도 연주된 적 없는 이 작품을 반 세기 전 한국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대전시향이 한국 초연한다. 24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후 7시.
브리튼은 전통적인 레퀴엠(진혼미사곡)의 라틴어 전례문과, 2차대전 중 25세로 전사한 영국 시인 윌프리드 오웬의 시를 엮어 이 곡을 작곡했다. 테너와 바리톤이 영어로 노래하는 오웬의 시는 적이 되어 싸우다 죽은 두 병사의 비통한 절규다. 전쟁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며 신을 향해 외치는 이 격렬한 항의는, 죽은 자의 안식과 신의 자비를 구하는 소프라노와 합창단의 라틴어 노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청중을 압도한다.
연주자는 세 그룹으로 나뉘어 배치된다. 테너와 바리톤은 실내 오케스트라 반주로 노래하고, 오르간이 포함된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소프라노와 짝을 이루며, 천상의 소리를 상징하는 소년합창단은 이들과 멀리 떨어져 오르간 반주로 노래한다.
대전시향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함신익이 직접 지휘하는 이번 공연의 출연자는 270여 명에 이른다. 소년합창단은 무대가 아닌 객석의 2층에 설 예정이다. 독창은 소프라노 김영미, 테너 브라이언 더우넌, 바리톤 정록기가 맡는다.
작곡가 브리튼은 동성애자, 반전주의자, 신념에 따른 병역 기피자였다. ‘전쟁 레퀴엠’은 2차대전 중 나치의 공습으로 파괴된 영국 코벤트리 대성당의 신축 기념 축제를 위해 씌어져 1962년 5월 30일 이 성당에서 초연됐다.
대전시향의 이번 공연은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과 더불어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작곡가 애런 제이 커니스의 2005년 작 ‘새롭게 그려진 하늘’을 아시아 초연한다. 전쟁의 참혹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기원하는 작품으로, 시카고 심포니가 지난해 세계 초연했고 이번 연주가 두 번째다. 문의 대전 (042)610-2264 서울 (02)751-9608.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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