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영국 스코틀랜드의 고도(古都) 에든버러는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프린지 페스티벌로 들썩인다. 2003년에만 7,500만 파운드(약 1,425억원)의 경제효과를 본 대형 축제지만 운영은 철저히 민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체 예산 150만 파운드(약 28억5,000만원) 중 시측이 지원하는 비용의 비율은 불과 2%. 시는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나섰지만 조직위원회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관의 입김이 세지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고 행사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관의 외압 논란으로 파행 운영됐던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7월13일 10회 개막을 앞두고 여전히 안개 속을 걷고 있다. 2004년 12월 김홍준 집행위원장 해촉을 둘러싼 영화계와의 갈등의 뇌관이 아직 제거되지 않아서다. 홍건표 부천시장 주도로 해촉안을 가결하며 영화제 이사회가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김 위원장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에 임명돼 영화제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인회의를 중심으로 영화계는 남은 임기가 2년 4개월이나 되던 김 위원장 해촉에 대해 “모멸감을 느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영화제 개막식 사회 때 부천시장의 소개를 빠뜨려 ‘괘씸죄’가 적용됐다” “시장이 자기 사람을 앉히려고 무리수를 뒀다”는 뒷말이 떠돈 것도 영화계의 반발에 불을 질렀다.
결국 영화계는 지난해 부천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했고, 같은 시기 서울에서 김 위원장 주도의 리얼 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면서 부천영화제는 반쪽 행사로 전락했다.
부천영화제는 지난해 9월 이장호 감독을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해 영화제 정상화에 나섰다. 관 개입의 통로로 여겨지던 이사회도 정관 개정으로 해체했다. 이 위원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해촉에 대해 공식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영화계의 반응은 아직 냉담하다. 기존 이사회 이사들이 여전히 새 의결 기구인 조직위원회의 구성원으로 남아있어 ‘눈 가리고 아웅’식 개선이라는 입장이다.
영화계는 부천영화제측이 좀 더 성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개막작으로 선정된 ‘삼거리 극장’의 상영 철회도 불사할 방침이다. 만일 이 방침이 현실화하면 이는 영화제 사상 초유의 불미스러운 사태가 될 수 있다.
영국의 한 영화평론가는 “부천은 콘크리트 덩어리다. 영화제라는 꽃이 없다면 끔찍한 회색 도시에 불과하다”고 말한바 있다. 부천의 꽃이 다시 활짝 필수 있도록 부천시가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원만한 해결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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