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애인이 되었습니다.” 그 다섯 장르가 문학을 주름잡던 20세기를 지나, 이제 바야흐로 21세기. “21세기에는 21세기에 맞는 문학이 필요했던 겁니다….” 곧 ‘낙서문학’이다.
사뭇 저릿한, 하지만 어딘지 찜찜한 이 ‘썰’(說)은, 평론가 ‘김성연’이, 낙서문학의 창시자이자 대가인 ‘유사풀’의 문학사적 업적을, 유사풀 평전을 준비중인 어떤 작가에게 하는 말이다, 김종광씨의 소설집 ‘낙서문학사’(문학과지성사)의 표제작 ‘낙서문학사 창시자편’ 속에서.
이번 책은 ‘모내기 블루스’‘경찰서여, 안녕’ 등의 작품으로 쫀득쫀득한 이야기의 맛과 구수한 입담을 선뵌, 등단 9년차 김종광 씨의 세 번째 작품집이다.
그는 이야기에 충실한 작가다. 충청도 사투리에 얹어, 여유작작한 의뭉과 해학, 날렵한 냉소로 버무려내는 특유의 이야기는 그래서 늘 재미있다.
표제작은 ‘낙서문학사 발흥자편’이라는 작품과 연작 형식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광부의 아들’이며 ‘작부의 새끼’이며, 의붓어미와 배다른 형제를 둔” 유사풀. 어려서부터 시 소설을 썼고, 일찍 신춘문예로 등단하지만, 25살에 요절한 문재(文才).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문학을 ‘낙서문학’이라고, 온 작품과 온 생애를 걸고 고독하게 고집한다. 그의 ‘문학’은 죽어서야 빛을 본다. 두 작품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채록하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그의 생모, 계모, 유년 친구, 중ㆍ고교시절 친구, 그의 여자들, 출판인, 평론가….
하지만 전언을 통해 ‘유사풀’이라는 동시대 실존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자신들의 기억과 입장, 처지, 그와 공유한 특별한 경험 등에 연루된 다양한, 심지어 상반되기까지 한 말들을 전한다. “나는 문학이라는 게 영 사기판 같았거든요. 그의 낙서문학 때문이죠.”(유사풀의 동거녀)
작품집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렸다. 표제작 연작이 문학의 ‘미적 모델’이 만들어지고 소통되고 관리ㆍ조작되는 과정의 분열적 모습을 드러냈다면, 다른 여러 작품들은, 지배적 가치기준을 지니지 못한 상태에서(아니, 지니기 힘든 현실에서) 가치 판단을 동반하는 말들(혹은 소음들)이 일구는 사회적 관계들을, 다양한 맛의 이야기들을 통해 조망한다.(비평가 최성실씨) 그의 소설이 이야기의 재미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 문학 속에 굳건히 선 자리도 바로 그 언저리일 것이다. 책은 이번 주말쯤 나올 예정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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