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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어둠속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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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어둠속의 열쇠

입력
2006.06.2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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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청하기 전에 문득 현관 열쇠가 잘 있는지 궁금했다. 제자리에 없었다. 콘솔 위의 잡다한 물건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부터 온 방안, 온 가구, 온 바닥을 두 번에 걸쳐 샅샅이 뒤졌다. 역시 없었다. 그렇다면? 현관문을 살짝 열고 손을 내밀어 열쇠구멍을 더듬었다. 없었다. 얼른 도로 문을 닫고 잠갔다.

그러고 보니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와 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 같다. 그래, 내가 문에 꽂아둔 채 잊은 열쇠를 빼낸 누군가가 옥상에 숨어있는 거야. 잠이 달아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였다. 넉넉잡아 한 시간 후에는 날이 밝아질 테지. 그 전에 그는 철수해야만 할 거다. 나는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유일한 통로인 계단을 지켜봤다.

5분, 10분, 느리게 어둠이 물러갔다. 창 아래로 거리의 보안등이 희부예지고 지붕들의 색깔이 선명해졌다. 드디어 다섯 시. 새들은 우짖고, 빛은 내 편이다! 나는 용기를 냈다. 방어용 무기로 쓰려고 책을 한 권 골랐다. 휘두르기 알맞은 두께와 크기의 하드커버 '피라미드, 상상 너머의 세계'를 들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짝 졸아 벽 모퉁이를 돌았다. 아무도 없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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