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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학군 개방은 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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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학군 개방은 판도라의 상자

입력
2006.06.2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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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2010년부터 학군 경계를 개방한 선지원 후추첨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제한적이나마 중학생들에게 고교 선택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현행 거주지 학군내 최근접 고교 배정제에 익숙한 학부모들에게 적지않은 혼란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많다.

● 선지원 후추첨제 문제 더 많아

우선적으로 학군 경계를 무시한 선지원 후추첨제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 집 근처에 가고 싶은 고교를 두고도 타 학군으로부터의 지원자들 때문에 결국 멀리 떨어진 고교에 배정되는 희생자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소위 명문고교 근처 지역이나 인기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서 더욱 많아질 것이다.

만일 새 제도에 의해 1만명의 타 학군 학생들이 8학군에 배정받게 된다면 8학군 거주 학생들 중 1만명은 어쩔 수 없이 타 학군 고교로 나갈 수밖에 없다. 선지원 방식으로의 변화에 의해 피해자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 피해자가 특정지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면 제도 변경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없다.

또 이 제도는 고교간 내신성적을 더욱 불균등하게 만들 것이다. 현재 서울시는 중학생들의 고입성적을 기준으로 우수학생과 열등학생을 골고루 고교에 배정(소위 ㄹ자 배정)하고 있어 특정 고교에 우수학생 혹은 열등학생들이 몰릴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선지원 후추첨제가 되면 이러한 균등 배정이 불가능하게 되어 학교간 내신성적 불균등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고교간 내신 격차 증대는 결국 대학입시에서 서울의 불이익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선지원 후추첨제에 의해 지원을 많이 받은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가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학교간 교육경쟁을 유도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역시 순진한 발상이다. 선지원을 받지 못한 비선호 고교들에도 결국에는 학생들을 강제 배정할 수밖에 없는 공교육제도를 갖고 있는 한 학교간 경쟁 유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선택제(school choice)를 운영하는 영국이나 뉴질랜드처럼 선택받지 못한 학교에 학생을 배정하지 않아 결국 문 닫는 학교들이 발생하고, 또 문 닫는 학교 교원들도 하루 아침에 실직될 수 있는 제도가 구축되기 전에는 실질적인 학교간 경쟁 유도는 거의 불가능함을 이미 선진국들이 보여주고 있다.

● 교육여건 개선 노력부터

지역간 교육격차는 해당 지역의 교육여건과 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사명감 높은 우수 교원들을 집중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학군제와 학생 배정 방식을 바꿔 이를 해결하려는 것은 분명 편법이다. 초ㆍ중등단계의 학생들은 여전히 ‘거주지 기준 최인근 학교 배정’ 방식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학군 경계를 무시한 선지원 후추첨제는 서울시민의 새로운 갈등과 고통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 상자 속에 매력적인 물건이 들어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열게 되면 결국 학생과 학부모뿐만 아니라 이를 운영할 정책 당국자들에게도 상당한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김흥주ㆍ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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