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말로 예정됐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이 결국 무산됐다. DJ 방북문제 실무접촉 대표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어제 "돌출 상황 때문에 6월 말 방북이 어렵게 됐다"며 다음 날짜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최근 정세와 북측의 소극적 자세 등으로 미뤄 기약이 없어 보인다.
DJ의 방북이 교착상태인 6자회담과 남북관계에 일정한 진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온 우리로서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가 오히려 소원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방북 연기가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는 바람에 방북의 취지가 크게 퇴색된 측면이 있고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북을 강행했다가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면 추진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가 될 것이다.
북측도 국제사회의 경고와 우려를 무릅쓰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려는 마당에 DJ의 방북을 받아들이기가 껄끄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예정된 방북 이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방북단 규모 등에 대한 입장을 통보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사일 문제가 돌출하기 전에도 북측이 DJ 방북에 미온적이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DJ가 열차방북을 강력히 희망했음에도 군사보장 조치가 안 이뤄졌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이 그 예다.
북측이 소극적인 것은 개인자격으로 방문하는 DJ에게서 특별히 얻을 것이 없고 줄 선물도 마땅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여러 차례 초청 의사를 밝혔고 이에 따라 구체적 일정까지 잡아 놓았다가 무산된 것은 결과적으로 또 한번 신뢰를 깬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DJ방북은 북측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6자회담 복귀 명분으로 삼아서 상황을 주도해 나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위협으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북측에 거듭 냉철한 정세판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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