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기업결합심사를 진행 중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은행 합병이 독과점을 야기하는 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료수집 과정에서부터 만만찮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체 은행들에게서 기업규모별 대출자료까지 모두 수집해야 하는 방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일부 은행들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반발하고 있어 공정위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며 맞서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20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각 은행들을 상대로 지난해 대출규모를 대기업, 중소기업, 가계 등의 분야로 분류해 대출통계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은행 독점성 판단의 주요 기준인 은행별 대출점유율을 확정할 때 대기업을 상대로 한 대출은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자료들이라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높은 신용도로 은행을 골라서 대출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대기업을 은행별 경쟁력에 따른 대출점유율 판단 기준에 포함시키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 대기업, 중기, 가계 대출별 점유율을 파악해야 하지만 금융감독기관에도 그런 세부자료는 없어서 각 시중은행에 관련자료를 요청했다"며 "그러나 일부 은행들은 '왜 우리가 그런 자료를 내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에 대한 인수합병 심사에 왜 우리가 '기밀급'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발 때문에 자료수집부터 원활치 않은 상태라는 것. 공정위는 비협조 은행들에게 법규정을 들어 "협조에 불응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며 설득하고 있다.
공정위 다른 관계자는 "과거 몇몇 은행 결합심사가 있었지만 독점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던 사항들이어서 이번 사건처럼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며 "하지만 이번 심사는 일부 수치나 시장구분 기준 하나하나에 의해 독점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무척 어려운 심사"라고 설명했다.
현행 법상 1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 기업의 점유율이 70% 이상이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판정되지만, 시장(대출ㆍ예금ㆍ외환ㆍ신용카드 등)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정위 허선 사무처장은 "결합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건은 3개월 정도 심사하고 필요하면 더 할 수 있지만 3개월 안에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 일부에서는 각 분야별 점유율 산정을 마무리 하려면 3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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