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적 자주' '좌파 신자유주의' '통합적 진보주의'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참여정부의 정치노선을 규정한 말들이다. 의미가 서로 반대되거나 어긋나는 듯한 단어를 합쳐 새 용어를 만들어내는 ‘모순 화법’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군 지휘관과의 대화에서 “자주 국방이라고 하니까 ‘반미하자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면서 “친미의 자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전쟁을 주업무로 하는 군인들이 전쟁이 없어야 된다는 목표를 갖고 일한다는 것이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는 “좌파, 우파 정책을 가릴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는 자신의 노선에 대해 “통합적 진보주의라고 이름을 붙일까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진보란 말에다가 우파적 뉘앙스가 있는 ‘통합’을 붙인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처럼 좌우, 진보와 보수 등을 아우르는 수사법을 구사하는 데 대해 “집권 후반기 들어 국정운영 기조가 다소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책이나 현안들의 해법을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인식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더욱 현실을 고려하게 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노 대통령이 최근 “정치와 역사에는 원칙주의를 견지해나가고 외교와 안보에서는 점진주의, 단계주의로 가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모순 화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실용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으나 “혼란과 혼선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경희대 정하용 교수(정치학)는 “진보와 보수를 모두 끌어안으려는 화법을 구사할 경우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그 같은 화법과 노선에 맞는 구체적 정책을 개발, 국민을 설득하면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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