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한민족재단(상임의장 이창주)이 주최하고 한국일보가 후원하는 ‘한반도의 새로운 전진: 코리아-러시아 협력과 미래’를 주제로 한 제7회 세계한민족포럼이 16~20일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려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모스크바에서 개막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자리를 옮기면서 열린 포럼은 한반도 분단 책임 당사국이자 북핵 6자 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열린 만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 방안에 특별한 관심이 모아졌다.
특히 한국과 러시아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 압박 강화에 우려를 나타내며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 더 유연한 자세로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도 잇달았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기조연설에서 “한반도에서 북한과 미국의 핵 대결정책이 첨예한 위기상황을 조성하고 있다”며 “지역 국가들이 올바른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긴장해소를 위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탈리 이그나텐코 이타르타스통신 사장은 “러시아는 남ㆍ북한 대화와 화해 국면을 지지하며, 한ㆍ러 협력은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는 유리 에브게니비치 포킨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원장, 바실리 데니소프 전 주북한 러시아대사,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등 전문가, 학자, 비정부기구(NGO) 대표자 70여명이 참석했다.
모스크바ㆍ상트페테르부르크=문향란기자 iami@hk.co.kr
■ 한민족포럼 발표요약/ "6자합의 이행 신뢰 회복부터"
▦로즈 괴테묄러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소장 - "북의 WMD 폐기는 구 소련 例 따라야
북핵 문제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 해소는 다자적 접근을 통해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베이징(北京)에서의 북핵 6자 회담은 그런 노력의 시작이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 특히 북핵 폐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북한의 WMD 폐기는 동북아 평화 구축과 전세계 비확산 체제 강화에 핵심 요소이다.
미국과 유럽이 1991년 구 소련 해체 후 러시아와 구 소련 공화국들의 WMD와 관련 시설 폐기에 적용했던 ‘협력적 위협 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ㆍCTR)’ 프로그램은 북한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북한처럼 은폐되고 적대적인 나라에 CTR을 적용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CTR 프로그램이 미ㆍ소 긴장시대에도 효율적이었고, 북한에서도 정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있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북한에 CTR 프로그램을 적용할 때는 WMD 폐기에 앞서 비핵화부터 추진해야 한다. CTR에 기반해 북한의 핵시설이 해체되면 그 자원이 민간 부문으로 전용돼 북한의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CTR이 북한에서 성공하려면 북핵 6자 회담 국가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미국은 지도적 역할을 하고, 중국의 정치적 지지도 필요하다. 특히 한국의 정치적 지지와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남북한 위협 감소법’을 제정, CTR 프로그램에 연간 최대 3억2,000만달러의 재정을 대야 한다. 이밖에도 비정부기구를 활용해 북한과 정부 차원의 공식 접촉을 보완하는 비공식 대화채널을 가동해야 하고, 북핵 6자회담의 합의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국내외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바실리 데니소프 러시아 전 북한 대사 - "6자회담은 북핵 해결에 최적의 기구"
제4차 북핵 6자 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성명을 이행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부터 지적해야겠다. 남ㆍ북한은 경제 및 인도적 차원의 협력을 확대하는 등 화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관련 남북한 관계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감이지만 남북한의 군사 대치 완화는 미흡한 수준이다.
6자 회담이 남긴 주요 과제를 살펴보면, 첫째 북한은 미국의 비간섭 보장 하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군사적 핵개발을 포기해야 한다. 둘째 북한에 평화적 핵 개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해체와 대북 경수로 지원 중단은 6자 회담의 합의정신에 일치하지 않으며 북한의 평화적 핵 개발 권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평화적 핵 개발권을 인정한 이란 핵 해법과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셋째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을 논의할 포럼 등 평화체제 기구를 구축하고 여기에는 미ㆍ러ㆍ중ㆍ일 주변 4개국도 모두 참여해야 한다.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미 행정부가 6자 회담을 북한과의 쌍무 협상의 도구 정도로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북한 회사에 대한 경제 제재, 인권 문제 제기 등으로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며 대화 국면을 난관에 부딪치게 만들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한국 정부에도 대북 교섭과 개성공단 등 경제 협력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러시아는 남ㆍ북한 화해 조성과 정치적 대화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6자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합리적이고 최적의 기구라는 데 동의하며, 한반도 문제는 다자간 신뢰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정옥임 선문대 교수 - "한미동맹틀 유지속 현안주도권 모색을"
북핵 문제는 21세기 한미동맹 관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9ㆍ11테러 이후 북핵 등 WMD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요인으로 부각되면서 한반도 안보 상황의 불확실성은 심화됐다. 2002년 북핵 위기가 재발한 가운데 한국의 반미 정서 확산과 미국의 이라크전 개시 등 정치상황의 변화로 북핵 문제는 한미관계를 공고화하기는커녕 양국 관계 나아가 한미 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6자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과 궁극적 평화체제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미국은 6자 회담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고, 한국은 미국에 행사할 지렛대가 없다. 미국은 우선 한국과 중국이 대북 투자ㆍ교역을 확대함으로써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둘째 북한이 6자 회담을 국제 사회의 압력을 회피하고 시간을 끌면서 북핵 존재의 기정사실화를 추구하는데 악용한다고도 의심한다.
6자 회담이 지지부진할 경우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1대1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따라서 한국은 6자 회담의 모멘텀을 살리는 외교 노력을 계속하되 최악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지분 및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면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 급변 사태도 대비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 해결을 한국이 주도하기 위해선 주변 강국의 힘을 제약해야 하며 더 압도적인 다른 강대국의 파워를 이용하는 대안도 고려해야 한다. 즉 한반도 안정에 미국의 역할은 분명히 필요하며 따라서 한미동맹의 틀은 유지돼야 한다.
▦ 박창근 중국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 교수 - "3각협력 유지… 한국에 달려"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 부문에서의 강력한 힘으로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굳건히 하며 21세기 초 세계 정치를 이끌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때문에 21세기 세계 정치는 중ㆍ미간의 경쟁을 주제로 전개될 것이다. 냉전 시대의 대립구도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잔존하는 동북아 특히 한반도가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북한_러시아_중국의 북3각이 해체된 것과 달리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에 의해 형성된 한국_미국-일본의 남3각은 존속되고 있다. 미국의 세계 전략, 대중국 전략에 있어서 미일동맹과 미한동맹은 모두 필요하다. 미국의 대 중국 견제 정책에 있어서 남북한의 전략적 지위는 높아지고 있다. 미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에 대해 일방적으로 제재와 억제를 강화하는 반면 중국은 한동안 소원했던 북한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남3각의 향후 존속에 가장 큰 변수는 한국이다. 한국은 한ㆍ러, 한ㆍ중, 그리고 남북 관계 개선에서 획기적 성과를 거두며 ‘북3각’을 구성하는 3자와의 관계 개선에 성공했다. 한국이 한미동맹을 파기할 경우 남3각은 해체되는데 이는 미국의 한반도 퇴출을 의미한다. 이 경우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나라 중국이다. 그러나 남북 통일이 가속화된다는 보장은 없다.
급변하는 동북아에서 한국은 일부 강대국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거나 복잡한 정세 변화에 냉철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외교정책의 방향을 잃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은 국가 발전을 위해 주체적으로 대내외 정책을 설정, 국내외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야여 할 것이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 - "CIS內 고려인들 정체성형성 새기로"
91년 구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가연합(CIS)의 ‘고려사람’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구 소련 사회의 주류였던 러시아인들이 힘을 잃고 원주민족이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 상황에서 원주민족의 사회문화에 동화할지, 보다 긴밀해진 한국과의 교류를 토대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할지, 아니면 거주국과 모국을 융합한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를 형성할지의 기로에 서게 됐다.
CIS의 고려사람은 2003년 557,732명으로 집계된다. 첫째 연해주 등지로 이주했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민 1,2세의 후손인 ‘대륙 고려사람’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둘째 일제 강점기에 일본령 남사할린으로 징용됐으나 45년 일본 패전 후 점령한 소련군의 출국금지조치로 발이 묶인 ‘사할린 고려인’이다. 셋째 반공 등 혐의로 소련에 유배됐거나 탈북 시베리아벌목공 등 ‘북한출신 고려사람’도 있다.
고려사람들은 구소련 체제에서 러시아 중심주의에 의한 소수민족의 동화정책을 따라 철저히 소비에트화했다. 경제 자립, 고등교육, 도시 정착, 전문직화를 통해 신분상승에 성공하면서 언어 등 러시아 문화ㆍ사회에 동화, 주류 러시아인과 원주민족의 중간에서 중개적 역할을 수행했다.
고려사람의 언어 교체는 예외적으로 빨리 이뤄졌는데, 구 소련 전체 소수민족집단 성원의 80%가 자기 민족어로 말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어로 말하는 고려사람의 비율은 59년 79.3%에서 89년 47.2%로 감소했다. 고려사람으로서 민족정체성은 잃지 않고 있다. 세대가 젊어질수록 온전한 한인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약화하고 있지만 자신을 한인이라고 생각하는 고려사람은 72%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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