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둥글다"는 명언은 축구에서 나온 말이다. 큰 공, 작은 공의 구기 종목이 여럿이지만 유독 축구에서 이 말이 통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실력이 말하는 분야, 정치 사회적 조건을 넘는 보편적 규칙만이 통하는 세계가 축구이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스포츠의 덕목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축구의 세계에서야말로 이 말은 더욱 실감난다. 세계적 인기와 참여를 누리는 스포츠 종목으로 축구를 따라갈 만한 건 없다. 축구는 정치를 초월한다.
■ 세계의 스포츠 축제로 올림픽이 으뜸인 양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올림픽은 '둥근 공'의 세계는 아니다. 정치적 강대국은 대체로 올림픽의 강대국이다. 냉전 체제 시절 미국과 옛 소련, 그리고 공산권 국가들이 올림픽을 휩쓸던 당시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스포츠는 스포츠만이 아닌, 국력이자, 국력과 체제 경쟁을 대리하던 정치적 장치였다. 관리와 육성을 국가가 도맡은 국가사업의 현장이 올림픽이다.
올림픽 성적의 순위가 국제 정치 질서의 위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국제 정치의 역학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번엔 미국과 중국이 강력한 경쟁을 벌이게 돼 있고 이는 스포츠를 무대로 한 포스트 냉전의 패권 다툼에 다름 아니다.
■ 올림픽과 달리 축구 세계의 강자와 약자는 정치적 패권질서와는 딴판이다. 국제 축구의 지배질서는 브라질 이탈리아 프랑스 등이 주축이다. 축구의 세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은 변방 후진국에 불과하다.
오히려 아프리카 국가들이 축구 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이 둥글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시아가 빠질 리가 없다. 올림픽과는 전혀 다른, 월드컵 축구의 매력이 바로 이것이다. 1966년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긴 것이 월드컵의 대표적 기록이고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에서 세네갈에 패퇴한 프랑스는 최근의 경우다.
■ 엊그제 한국이 프랑스를 상대로 기록한 무승부 역시 '둥근 공'의 세계를 말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러니 전 국민이 밤을 새워 열광할 만하다.
다만 5ㆍ31 지방선거에서 질풍노도의 민의를 표출하고 곧 이어 축구에서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에선 축구의 정치성을 보게 된다는 점이 공교롭다. 여당에 사상 최대의 패배를 던져 놓고 이번엔 축구에 마냥 환호하는 사람들은 지금 정치를 마구 조롱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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