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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일수록 아들 선호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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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일수록 아들 선호 심하다

입력
2006.06.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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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계 증권사에 다니는 K(38ㆍ여)씨는 지난해 셋째를 낳았다. 딸 둘을 낳고 더 이상 출산계획이 없었지만, 수십 억대 자산가인 시부모님이 아들을 낳은 동서만 끔찍이 아끼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재산상속에서 차별을 받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K씨는 남편과 상의 끝에 아들 낳는 법을 알려준다는 산부인과를 6개월여 다닌 끝에 결국 아들을 낳았다.

#2. 딸만 셋을 둔 주부 L(43)씨도 최근 아들을 낳았다. 셋째 딸과는 4살 터울이 진다. 나이가 많은 게 께름칙했지만, ‘노후 대비’를 위해서도 아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를 찾아 다니는 등 1년여 공을 들였다. L씨는 “남편이 개인사업과 부동산 투자로 꽤 많은 재산을 모았다”며 “우리 부부가 늙었을 때 뒷바라지 해주고, 제사라도 지내줄 수 있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들을 낳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3. 주부 김모(38)씨는 매달 한번씩 둘째(초등학교 4학년)가 다녔던 유치원 엄마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전체 11명 중 자녀가 셋 이상인 경우는 단 두 명이다. 남편 직업이 모두 개업의사로, 딸만 둘을 두었다가 셋째(아들)를 낳은 경우다. 남편이 회사원인 김씨는 “우리 같은 평범한 월급쟁이는 성별에 관계 없이 애 둘을 낳으면 출산을 포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딸만 둘인 부자들은 갖은 수단을 써서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 통계청 인구자료 분석

우리나라 전체 여자인구가 남자인구를 추월하는 등 남아 선호사상이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부유층들 사이에선 여전히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깊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또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부자동네 일수록 유소년 성비 높아

부유층의 남아 선호는 서울의 지역별 남녀 성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통계청의 인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유층과 중산층 이상이 많이 사는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ㆍ양천구 등 4개 구의 14세 미만 인구 남녀 성비는 서울시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2005년 기준 0~4세 인구의 경우 서울의 평균 남녀 성비는 여자 100명당 남자 106.5명이었지만, 강남구는 107.1명, 서초구 108.2명, 송파구 107.2명, 양천구 107.6명 등이었다. 또 5~9세 인구는 서울 평균이 107.9명인데 반해, ▦강남구 111.5명 ▦서초구 111.1명 ▦송파구 109.2명 ▦양천구 112.0명 등이었다. 목동이 있는 양천구의 경우 남녀 성비가 가장 낮은 서울 중구(101.6명)나 동대문구(103.1명)에 비해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 100명당 남자 숫자가 10명 정도 더 많은 셈이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저학년 연령대(10~14세)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 평균이 111.4명인 반면, ▦강남구 119.6명 ▦서초구 112.6명 ▦송파구 111.7명 ▦양천구 114.3 명 등이었다. 특히 강남구는 이 연령대 남녀 성비가 가장 낮은 마포구(107.0명)에 비해 여자 100명당 남자 숫자가 12명이나 더 많았다.

■ 셋째 이상 성비도 부자동네가 높아

소득수준이 높은 이들 4개 구가 서울의 다른 구에 비해 남아 선호가 강하다는 것은 셋째 아이의 남녀 성비에서도 확인된다. 첫째 아이 성비는 강남구(남자비율 50.9%), 서초구(50.8%), 송파구(51.9%), 양천구(51.3%) 등 4개 구가 서울 평균(51.3%)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셋째 이상의 경우 서울 평균은 55.2%인데 반해, ▦강남구 55.9% ▦서초구 57.1% ▦송파구 56.4% ▦양천구 58.1% 등으로 모두 서울의 평균을 상회했다. 셋째 이상 자녀의 성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남자 아이를 갖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실제 다른 지역에 비해 아들 출산의 성공확률도 더 높다는 것을 뜻한다.

■ 강ㆍ남북 초등학교 성비 격차도 심각

부자동네 일수록 아들을 선호하다 보니 서울 강ㆍ남북 초등학교 간 성비 격차도 심각하다.본보 취재팀이 강남구 대치동, 도곡동, 청담동 등의 3개 초등학교와 동대문구, 은평구, 노원구 등 강북 3개 초등학교의 남녀 성비를 분석한 결과, 강남구의 남녀 성비가 훨씬 높았다.

강북 3개 초등학교의 남녀 성비는 각각 105명, 114명, 116명으로 조사된 반면, 강남 3개 초등학교는 각각 118명, 121명, 125명에 달했다. 심한 경우 여자 초등학생 100명당 남자가 20명이나 더 많은 것이다. 한 학급 당 학생 수를 33명으로 잡으면, 강남지역 초등학교의 학급 당 남자 숫자가 강북보다 6명이나 더 많은 셈이다.

■ 부의 대물림이 가장 큰 이유

전문가들은 소득이 많을수록 남아 선호가 더 강한 현상에 대해 부의 대물림과 관련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부연구위원은 “부유층의 남아 선호는 단순히 여유가 되기 때문에 애를 낳는 차원 이상”이라며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딸보다는 아들 자식이 더 낫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 원장도 “아들을 갖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편이 고소득 자영업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전업주부들”이라며 “한때 유행했던 늦둥이 갖기 붐이라기 보다는 시부모의 재산이나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줄 수 있는 자식이 필요하다는 차원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부의 대물림을 위해 ‘전략적으로’ 아들을 낳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이다.

■ 재벌 2·3세들 들여다보니…

개인사업을 하는 김모(40ㆍ경기 분당)씨는 딸 둘을 낳은 뒤 정관수술을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소식을 전해들은 김씨의 부모는 “장남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재산 상속은 꿈도 꾸지 말라”고 노발대발했다. 김씨의 아내는 아들 낳는 체질로 바꿔준다는 한의원과 산부인과 등을 찾아 다닌 끝에 결국 아들을 낳았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씨의 부친은 그 즉시 강남권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한 채와 20억원대 땅을 증여했다.

부자는 재산 상속을 위해 자녀를 많이 낳고, 특히 아들을 선호한다는 통념은 맞는 것일까? 본보 취재팀이 국내 4대 재벌그룹의 가계도를 분석한 결과, 1.08명까지 떨어진 우리나라의 현재 출산율을 감안할 때 세간의 추정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대 창업자들의 ‘다산(多産)’ 전통은 2ㆍ3세로 내려올수록 크게 무뎌져, 요즘엔 두 자녀를 두는 게 보편적이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4남6녀,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은 8남1녀, LG그룹 고 구인회 회장은 6남4녀를 뒀다. SK그룹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은 3남4녀를 뒀으며, 형에게서 그룹을 이어받은 고 최종현 회장은 2남1녀를 낳았다.

재벌 2ㆍ3세로 내려오면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1남3녀를 낳았고,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1남1녀, 둘째 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는 1남2녀를 뒀다. 삼성가의 맏딸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3남2녀로 다소 많은 자녀를 뒀지만, 3세들은 대부분 2~3명의 자녀를 두는 데 그쳤다. 4세들의 남녀 성비는 5대7로 딸이 더 많았다.

현대가의 2세들도 2~4명의 자녀를 두는데 그쳤다. 늦둥이 아들(9)을 낳은 정몽준 의원 정도가 2남2녀로 자녀가 많은 편이다. 3세들의 남녀 성비는 12대13으로 거의 비슷했다. 이들의 평균 출산율은 2.1명이며, 4세들의 남녀 성비는 9대4로 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SK 최종현 회장의 두 아들은 각각 1남2녀, 2남1녀를 뒀다.

LG가는 아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회(會)’자 돌림이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이나 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2세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4남2녀를 뒀다. 하지만 3세로 내려오면 자녀 수가 평균 2명 선으로 줄어든다. 장남 구본무 회장은 딸만 둘을 두었고, 2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1남1녀), 3남 구본준 LG필립스LCD부회장(1남1녀), 4남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1남2녀) 등도 아들 하나로 만족한 경우다.

모 재벌그룹 관계자는 “요즘의 재벌 2ㆍ3세들은 아들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자식을 적게 낳고 부부 중심으로 깔끔하게 살고 싶어한다”면서 “아들을 많이 뒀다가 재산 분쟁 등으로 그룹이 풍비박산 났던 일부 재벌의 경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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