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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샘플링의 명수, 쇼스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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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샘플링의 명수, 쇼스타코비치

입력
2006.06.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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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에서 표절 시비가 붙을 때마다 나오는 논쟁이 있다. 표절이 아니냐는 공격에 작곡가 측에서는 표절이 아니라 샘플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남이 작곡한 선율을 마치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교묘하게 사용하는 것이 표절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기존 음악에서 선율을 빌려오는 것은 샘플링도 마찬가지이지만, 차용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점이 표절과 다르다. 샘플링은 원작자에 경의를 표하는 방법으로도 쓰이고, 대중 음악에서는 아예 원곡의 음원 자체를 그대로 삽입해서 재미있는 음향적 효과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의 첫 멜로디 ‘빠빠빠밤’ 같은 소리를 집어 넣었다고 치자. 관객의 기준에서 볼 때 이것은 샘플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율을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베토벤 교향곡을 재미있게 사용했군!” 이라고 판단한다. 만약 잘 알려지지 않은 선율을 가져와서 직접 작곡한듯 부각시킨다면 표절 시비에 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소비자와 양심적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샘플링입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선 누구나 그 곡에 익숙하거나 원곡의 사용 의도를 적절히 밝혀줘야 한다. 그래야 표절이 아닌 창작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해보지 못한 신곡을 작곡자끼리 합의해 샘플링이랍시고 내놓으면서 그런 사항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표절이 ‘은근슬쩍 빌려 쓰기’ 라고 한다면 샘플링은 그 반대 개념, 즉 드러내놓고 갖다 쓰는 것이다.

올해 탄생100주년을 맞는 쇼스타코비치는 샘플링의 선수다. 그는 과거의 작품에 쓰였던 멜로디를 정말이지 ‘드러내놓고’ 사용한 사람이다. 특히 그의 현악사중주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8번은 샘플링으로 유명한 곡이다. 누구의 멜로디를 사용했을까? 바로 자신의 곡들이다.

그는 자기가 작곡했던 첼로협주곡 1번, 교향곡 1번과 10번, 오페라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 러시아 혁명가, 영화 음악 ‘젊은 친위대’ 등의 무수한 멜로디들을 아주 교묘하게 현악사중주8번에 다시 등장시킨다.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듯이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DSCH를 음계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전적인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표절이 아니라 샘플링이라고 주장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조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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