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비긴 것은 좋지만 졸려서…”
19일 새벽 극적인 무승부의 감동을 맛 본 국민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월드컵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밀려드는 피로 때문에 업무에 차질을 빚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성남시청 공무원 윤모(49)씨는 “어렵게 끌려가던 경기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투혼으로 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다”며 “박지성, 이운재 등 대표팀 선수들의 플레이를 칭찬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6강 이후도 관심거리였다. 서울 건대부고 김모(17)군은 “프랑스라는 강팀에게 지지 않은 것만해도 큰 소득”이라며 “내친 김에 스위스에 승리해서 조1위로 16강에 올라야 H조의 스페인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의 ‘행복한 여운’과는 달리 가뜩이나 월요일이 싫은 직장인들에겐 기나긴 하루였다. E건설 회계팀 이모(36)씨는 “오전에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긴장이 돼서 그나마 버텼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는 도저히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며 “잠을 쫓기 위해 계속 사무실 밖으로 들락날락 하면서 부서장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H상사 전모(35)씨는 “새벽에 일어나 경기를 볼 때는 몰랐는데 출근해서는 졸음을 억지로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며 “동료들도 연신 하품을 해대는 바람에 사무실 전체가 하루종일 늘어진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지각사태도 속출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모(29)씨는 “경기가 끝난 후 응원열기도 식힐 겸 잠깐 눈을 붙였다가 40분 늦었다”며 “그나마 나보다 늦게 온 동료가 2명 더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모(34)씨는 “다른 팀의 경기까지 모두 챙겨보느라 밤을 꼬박 새는 바람에 주간회의에 제대로 참석하지도 못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눈치 볼 것 없이 월차휴가를 낼 것 그랬다”고 후회했다.
학생들도 후유증에 시달리긴 마찬가지였다. 서울 S대 손모(27)씨는 “19일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축구 응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아침에 커피를 3잔이나 마시며 간신히 시험을 치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망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S고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기말고사 문제를 일찌감치 다 풀고 나서 책상에 엎드려 부족한 잠을 청해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서울 D중 김모(38ㆍ여) 교사는 “오늘은 도무지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며 “한국-스위전이 열리는 이번 주 토요일이 그나마 놀토(노는 토요일)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거리 응원단은 모처럼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던 13일 토고전 때와 달리 서울광장, 상암월드컵경기장 등 전국적으로 100만여명이 거리응원에 나섰지만 일부 축구팬들은 직접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와 자발적으로 뒤처리를 했다. 경찰의 엄중한 대응방침을 의식한 듯 경기 후 대부분의 응원인파가 곧바로 해산하면서 도로를 점거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무질서한 모습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응원 열기에 취해 전국적으로 70여명이 다치기도 했다. 광주에서는 치킨집에서 함께 경기를 보며 각각 한국과 프랑스의 승리를 장담하던 30대 남자 간에 시비가 붙어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대구에서는 자신의 허락없이 거리응원을 나갔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밥상을 집어던져 이마에 상처를 입힌 혐의로 4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의정부에서는 프랑스에 선제골을 허용한 뒤 “왜 응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느냐”며 말을 걸었다가 패싸움을 벌인 손모(31)씨 등 6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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