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이 월드컵을 계기로 ‘국기 공포증’에서 벗어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8일 나치즘과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국기를 흔들며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독일인들이 국기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드컵 개막 이후 독일 거리에서 매일 저녁 국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검정 빨강 황금색의 독일 국기가 새겨진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작은 국기를 달고 거리를 달리는 차량도 적지 않다. 얼굴에다 독일국기를 칠한 어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만 해도 독일에서 이런 풍경은 상상하기 조차 어려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들은 집단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해 유니폼을 집단적으로 입거나 국기를 흔드는 행위를 자제해 왔다. 일부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건물 앞에 국기를 게양하는 것도 꺼릴 정도였다.
베를린에 있는 미국연구소의 게릴 스미스 박사는 “독일인들이 이번 월드컵으로 억눌려왔던 감정을 표출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일으킨 나라라는 데서 비롯된 국민들의 열등감과 죄책감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해소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 타임스는 “과거 세대에 비해 역사적 책임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젊은이들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취임한 뒤 경제 호조와 독일 출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취임도 독일인들의 자부심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월드컵 기간에 사람들이 국기를 흔드는 것은 애국심의 발현이 아니라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라며 이를 독일인의 애국심과 연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도했다.
독일 국기는 3가지 색으로 구성된 3색기로 맨 위가 검정색, 가운데가 빨간색, 맨 밑이 황금색이다. 현재 독일 국기는 독일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있는 것과 독수리 문장이 없는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관공서용이고 후자는 민간용이다. 독일 국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프랑스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침공해 제국이 해체됐던 1813년 저항하던 민병대가 입었던 옷의 무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 때에도 일장기를 혐오하던 일본인들이 일본대표팀 경기 때마다 일장기를 열렬히 흔들며 애국심을 고취한 바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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