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전을 8시간 앞둔 18일 밤 8시 서울 시청 앞 광장은 거리응원단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나팔을 불고 북을 치는‘12번째 선수’붉은악마들이 모여들었다. 아빠의 양 어깨에 올라탄 앵두 같은 아이의 머리에는 빨간 뿔이 돋아 있었다. 선동(仙童) 같았다. 함박웃음이었다. 태극기를 옷처럼 몸에 둘러 싼 앳된 소녀도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에게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파 속에 있으니 휘파람을 부는 것 같았다. 살짝 달뜨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서자 발 디딜 곳 없이 붉은 함성이 광장 공중에 빼곡하게 들어찼다. 누가 이들을 하나의 열망으로 노래하게 하는가. 눈을 잠시 가리고 서 있어 보았다. 팽팽했다.
태극전사들과 프랑스 선수들이 라이프치히 경기장에 등장하고 붉은악마 응원단석에 큰 통천 문구가 떠올랐다.‘우리는 그들을 넘어섰다.’시청 앞 광장에 순간 함성 기둥이 불끈 솟아올랐다. 휘슬이 울리고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초반 공격이 거세게 몰아쳤다.
파상공세를 예상 못한 것이 아니었다. 노쇠한 프랑스가 초반에 폭풍처럼 몰아칠 거라는 예보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선수들 가운데 몇몇은 연거푸 미끄러졌다.
중원도 잦게 빼앗겼다. 전반 9분 수비수 김남일의 몸에 맞고 흐른 공을 앙리가 낚아채 그물을 출렁 흔들었다. 광장은 일순에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그러나, 거리응원단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뜻을 모아서 태극전사를 다시 응원했다. 들썽들썽했다. 수문장 이운재의 선방이 이어졌고, 거기서부터 서서히 폭풍은 우리 마음의 대륙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곳이 우리의 바닥이었다. 누군가가“말루다는 별로다”라고 말했다. 웃었다. 누군가가 지단을 일러“털 빠진 늙은 종마 같다”고 말했다. 또 웃었다. 천천히 먹구름이 걷혀 가고 있었다.
후반 들어서며 무너진 중원을 되찾으려는 태극전사들의 역공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팽팽한 접전으로 가더니 경합은 서서히 우리 쪽 우세로 돌아섰다.
접시천칭이 천천히 기울듯이. 프랑스 공격수 앙리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못마땅하다는 눈치였다. 흐름을 바꾸는 저력과 근성이 태극전사에겐 있었다. 광장은 갓 데운 도가니처럼 금방 뜨거워졌다. 그래, 늙은 수탉을 잡으러 가자. 그리하여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의 건재를 알리자.
태극전사들의 두둑한 배짱이 살아나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던 바를 그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허리를 장악하더니 후반 36분 극적인, 그토록 고대하던 동점골이 터졌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의 발끝에 맞은 공은 프랑스 골키퍼의 손끝을 살짝 넘어서 긴 곡선을 그려 나갔다. 아, 그 곡선을 잊지 못하리라! 시청 앞 광장이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모든 거리응원단의 시선이 그 곡선의 궤적을 지극히 천천히 따라갔다. 골은 허공을 한 치씩 밀며 밀며 골문 안으로 참말로 기적 같이 빠져 들어갔다.
세계가 깜짝 놀랄 큰 일이 터졌다. 광장의 인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했다. 황홀한 우레가 지나갔다. 너무 기뻐도 눈물이 왔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경기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은 망연자실해 얼음처럼 서 있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주먹을 야물게 쥐어 공중 위로 치켜 올렸다.
태극전사들은 여한없이 싸웠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환호하는 응원단이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우리는 이 가슴 벅찬 소식을 안고 직장으로 집으로 학교로 돌아 갈 것이다. 돌아가거든 충분히 맘껏 서로서로 이 낭보를 나누자. 이 기쁜 소식은 무료한 일상에 보약이 될 것일 터. 우리들 붉은 심장이 이 충만한 에너지로 오래 맥동할 것이다.
시인 문태준
문태준 시인 : 1970년 김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미당문학상’‘노작문학상’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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