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객관적으로 전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망설임 없이 인정한 아드보카트 감독의 ‘겸손한’ 전술이 성과를 거둔 경기였다. 상대를 파악한 뒤,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전술을 펼친 덕택에 승점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토고 연파를 자신한 채 스위스 전에 여유를 부린 프랑스는 박지성의 얌전한 골 한방으로 16강 진출을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비에 승부 건 아드보카트의 뚝심
프랑스에 비해 개인기량이 부족하고 수비쪽에 결점이 크다는 한국선수들의 한계를 인식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적인 선발 명단을 짰다.
수비능력이 좋은 선수들로 중앙 3인의 미드필더를 구성했고, 윙포워드 2명을 수비쪽에 적극 가담시켜 전반을 ‘작심하고’ 수세로 만들었다. 수비진도 토고전과 달리 포백으로 구성했고 상대의 오른쪽 수비를 주로 공략하는 앙리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이영표의 오른쪽 전환도 눈에 띄었다. 전반전에 최대한 실점을 줄이고 후반전에 승부를 걸겠다는 구상이었다.
그 결과 미드필드의 강한 압박으로 지단의 패스성공률을 떨어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빈 공간을 지속적으로 파고드는 앙리에게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은 전반 9분 윌토르가 공을 몰고 슛을 시도하는 사이 수비수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선 앙리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해 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페이스를 바꾸지 않았다. 수비라인을 깊숙이 내려 앉히고 미드필드진을 계속 수비에 밀착시켜 상대 미드필더들이 공격진에게 효과적인 패스연결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전성기에 비해 활동량이 크게 줄어든 지단의 패스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 연결됐고 자연히 앙리의 발 빠른 움직임도 효과가 없었다.
더욱이 한국 측면 미드필더들의 빠른 역습은 프랑스 수비진의 공격 가담을 둔화시켰다. 왼쪽수비 아비달과 오른쪽수비 사뇰은 이천수와 박지성의 속공 가담을 우려해 앞쪽으로 많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는 앙리의 첫 골 이후 노골 처리된 비에라의 헤딩슛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전반전을 마감하고 말았다.
프랑스의 패착은 지단에 대한 미련
프랑스 공격의 걸림돌이 된 것은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화된 지단이었다. 오히려 측면 수비수들의 오버래핑이나 미드필드까지 내려온 앙리의 플레이에 의존하는 편이 옳았겠지만, 도메네크 감독은 지단에 대한 신뢰를 접지 않았다. 한국이 미드필드와 수비라인 사이의 공간을 줄이고 여러 명이 번갈아가며 지단을 방어하는 상황이라면 앙리가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겸하는 마당에 지단에게 미련을 둘 이유가 없었다. 리베리를 조기 투입해 측면공격의 활로를 모색하거나, 사아나 트레제게 등과 바꿔 공격진에 무게를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게는 고마운 망설임이었지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종합적 패착이 되고 말았다.
반면 후반 들어 숫자를 늘리며 슬금슬금 점유율을 높여가던 한국의 공격은 박지성의 골로 성과를 냈다. 안정환-조재진 외에 2선에서 돌아 들어오던 또 한명의 공격수를 놓친 프랑스 수비진은 아쉬움에 한숨만 쉬었고 골을 걷어낼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만 갈라스는 죄없는 ‘팀가이스트’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한국을 압도했으나 실점하고만 상황이 그저 어이없기만 했던 갈라스의 잔뜩 찌푸린 인상에서 프랑스의 오만함을 읽을 수 있었다면 과장일까. 그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프랑스는 토고 전에서도 고생할 가능성이 크다. 빠른 속공으로 역습을 할 줄 아는 토고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반짝 용병술의 힘
이제 남은 건 스위스다. 탄탄한 수비력을 과시한 스위스와의 대결은 16강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한국 대표팀에게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지난 2경기에서 용병술의 힘을 보여준 아드보카트 감독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다음 경기에서도 남김없이 발휘되길 소망해본다.
독일에서(MBC 축구해설위원, 엠파스 토털사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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