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 이창무(32)씨는 미국 유학 중 만난 태국 여성과 인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그러나 신부측 가족 4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민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이들은 당시 입국심사대에서 영어로 입국 목적을 묻는 출입국관리소 심사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이들은 미국 비자도 있었고 여권에는 사업차 일본 중국 홍콩 등 여러 국가를 다녀온 기록도 있었다. 한국에서 받은 청첩장도 있었지만 심사관은 이들을 출입국관리소 내 입국재심실과 인터뷰실로 데리고 갔다.
입국목적을 묻고 불법체류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재심실은 앞서 도착한 2대의 여객기에서 내린 태국인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한없이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더구나 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없어 인터뷰 시간은 더 지체됐다. 이들은 공항을 빠져 나오는 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이들이 그나마 재심실을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재심실에 대기 중이던 태국인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관광객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씨의 장인 차이랏씨는 “나처럼 신원이 확실한 사람도 이런 불편을 겪는데 다른 외국인들은 오죽하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차이랏씨는 “한국인이 외국에 입국할 때 이런 대접 받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비영어권 외국인 입국자는 증가하는데 공항에서 이들 언어를 구사하는 직원은 턱없이 부족해 외국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태국인 입국자는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에는 11만3,000여명에 달했지만 태국어 능통자는 9명에 불과하다. 중국인은 81만 명이 들어왔지만 중국어 구사자는 10명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러시아와 인도에서도 14만5,000여명과 5만8,000여명이 한국을 찾았지만 이들 언어 구사자는 각각 3명에 불과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4월 특수외국어 특채자 70명을 뽑아 33명을 인천공항에 배치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전체 직원 600여명이 24개 팀으로 출국 및 입국심사대에 나뉘어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적시적소에 직원을 배치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특정국가 언어를 구사하는 직원은 있지만 정작 필요한 때에 해당 직원은 심사대에 없다는 말이다. 출입국관리소는 보완책으로 태국 러시아 베트남 인도 몽골 방글라데시어 등 소수언어 전화통역 자원봉사자 32명을 확보했지만 큰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입국재심실의 한 직원은 “급하게 통역을 부탁하면 바쁘다며 전화를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이 입국심사대에서 재심 대상으로 분류되면 재심실에서 최소 1시간 이상 대기하게 된다. 공항을 통과하는데 진을 뺀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리 없다.
베트남 태국 등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박주화(39)씨는 “한국에 입국할 때는 말이 안 통하니까 재직증명서, 계좌잔고 증명서 등을 따로 준비해 가는 관광객도 있다”며 “동남아시아 등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출입국관리소측은 “현재 여러 여건상 이들의 입장까지 고려한 심사는 어렵다”고 밝혔다. 입국심사대의 한 직원은 “대기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상황에서 인터뷰를 길게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말이 통하지 않는 입국자는 재심대상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