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프랑스와의 극적 무승부에 환호하는 붉은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린 월요일 새벽,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주시하며 밤을 지샌 정부와 군 관계자들은 누구보다 안도했을 듯하다. 북한이 일요일 낮 미사일을 쏘아올렸더라면, 박지성이 쏜 동점 골의 환희를 느긋하게 즐길 겨를 없이 긴장된 아침을 맞았을 것이다.
앞서 북한 매체가 박지성의 토고 전 활약을 소개한 사실에 비춰, 남쪽 동포들의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 배려한 거냐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그만큼 다행스럽다.
● 월드컵 감동에 묻힌 미사일 위기
북한을 위험한 망나니 집단으로 여기는 이들은 무슨 망발이냐고 욕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서해 도발로 잔치마당에 재뿌린 북한이 이번에도 긴장을 조성한 것은 못된 짓만 골라 하는 작태라고 흥분할 법하다. 우연한 일치인지 의도적 도발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월드컵 열기와 군사적 긴장이 엇갈리는 상황이 되풀이 된 것은 분명 공교롭다.
미사일 위기가 어떤 결말에 이를지 쉽게 점칠 수 없다. 다만 월드컵 열기
속에 고조된 위기에 우리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되짚어 볼만 하다. 위기의 본질과 영향을 가늠하는데 도움될 것이다. 북한이 언제 발사를 감행할 지 모르나, 16강 진출을 가를 스위스 전은 며칠 남았으니 잠시 관심 갖는 수고마저 피할 건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준비 소식에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반응했다. 어떤 근거에선지 모르나 대포동 2호 미사일이 알래스카와 미 본토까지 위협한다면서도, 미국이 경제제재 완화 등의 양보를 할 리 없어 북한이 얻을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봉쇄 강화와 유엔 안보리 회부가 예상되는 등 한층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니 시험발사 포기가 상책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중도에 요격해 파괴하면 헛수고만 하게 된다고 자상하게 타이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투적 반응은 진정성이나 쓸모가 의심스럽다. 물론 정부가 북한의 자제를 촉구하는 것은 이해한다. 미국과 일본이 강경 대응, 긴장이 높아지면 누구보다 우리 정부가 곤란하게 된다. 미ㆍ일은 물론이고 국내 보수여론이 북한을 욕하는 것을 가로막고 나서 변호할 순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대세를 따르면 대북정책 추진이 어렵다.
따라서 속내가 어떻든 북한을 나무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민간 전문가와 언론까지 북한의 처지는 도외시한 채 대뜸 비난하는 것은 우습다. 명색이 한 국가가 온갖 지혜를 짜낸 행위를 지레 어리석다고 규정하는 것은 국제문제를 올바로 보는 안목과도 거리 멀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미사일 발사 시도도 '벼랑 끝 협상'전략으로 보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음을 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북한 입장을 헤아리는데 과거보다 소홀한 것은 정부와 대북 정책의 신뢰가 추락한 탓이 크다.
그러나 나라 밖 전문가들은 미국이 정체상태에 빠진 6자 회담은 방치한 채 금융봉쇄 등으로 북한을 궁지로 몬 것이 다시 벼랑 끝 대치를 불렀다는 객관적 풀이를 내놓는다. 이들은 또 미국의 압박이 웬만큼 효과를 거둔 만큼, 금융봉쇄를 늦추는 타협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가 미사일 위기를 덩달아 떠들면서도 기실 누구보다 무심하고 태연한 바탕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 발 위기에 익숙한 나머지 성숙한 대응의 지혜를 깨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늘 잠재적 불안을 느끼는 탓에 어떤 경험보다 자극적인 감동과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월드컵 승리에 열렬히 도취한다는 사회심리적 분석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마약 효과'에 기대어 현재와 미래의 불안을 잊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 북한 문제 늘 진지하게 지켜봐야
공연히 심각한 얘기를 할 때냐고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수든 진보든 간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 한껏 고양된 민족주의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은 유념할 만 하다. 이번 월드컵 열기와 미사일 위기도 그런 틀에 비춰볼 만 하다는 얘기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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