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현림과 그녀의 어린 딸 서현이와 청계천 나들이를 했다. 광화문 쪽 초입 분수대 주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서현이가 풍선을 사달라고 칭얼대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풍선을 하나씩 든 여고생들이 개천 난간에 앉아 노닥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샀냐고 물으니 종로에서 무슨 생명공학자 지지 서명을 받으며 나눠주는 풍선이란다.
서현이는 그 앞을 떠나지 않고 칭얼댔고, 그래서 그들에게 사정해보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맨 앞에 앉은 여학생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도 서명하고 받아온 거예요!" 덜 떨어지기는! 풍선 갖고 놀 나이도 아니면서. 그러게 그런 서명이나 하고 다니지. 미운 생각이 치미는데 맨 뒤의 여학생이 민망한 듯 서현이에게 풍선을 건넸다.
그 친구 덕분에 피차 체면이 살았다. 청계천을 따라 사람들이 많고도 많았다. 그 통에 서현이 풍선이 가로등 기둥의 뾰족한 돌기에 부딪쳐 터져버렸다. 서현이를 달래기 위해 바람 빠진 풍선조각을 치켜들고 그 애 뒤를 쫓아 달려야 했다. 서현이는 풍선에 매인 실 끝을 쥐고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달리고. 어찌나 재빠른지 뒤따르기가 죽을 맛이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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