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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민주개혁평화통일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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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민주개혁평화통일세력

입력
2006.06.1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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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최근 회견에서 단연 눈에 들어온 것은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을 더 이상 훈장처럼 달고 다니지 않겠다"는 대목이었다. "민주화세력은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로 보상을 받았고, 한나라당은 정권을 내주면서 심판을 받았다"고 한 부분도 그랬다. 그가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는 무게감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화 세력이 선민(選民)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은 여권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지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편가르기와 오만, 무능 등 여권 몰락의 주 원인인 이른바 '싸가지' 행태가 여기서 비롯된 탓이다. 자신들은 남과 다르다는 생각에 걸핏하면 상대를 적으로 돌리고 악이라고 매도했으며, 논란만 일으켰지 대안을 제시하는 데 게을렀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민주화 세력이라는 명찰이 민심을 얻는데도 더 이상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안 된다는 점이다. 김 의장 말대로, 그들에게 두 번의 집권기회를 주었으면 충분하다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그런 징후는 2002년에 이미 나타났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후보 당선 직후 '신민주 연합론'을 기치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노 후보는 민주화 투쟁의 상징 세력이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다시 손을 잡는다면 그 보다 근사한 구도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노 후보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민심은 두 세력의 연합을 아름답게 보지 않았다. 그 때 두 세력은 각각 'IMF를 초래한 무능 정권', '대통령 아들 비리로 얼룩진 부패정권'으로 몰려 있었다. 80년대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가 언제까지나 먹히리라고 착각한 노 후보의 악수(惡手)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386운동권 출신이 대거 등원한 것을 민주화 세력의 승리라고 해석한다면 그 역시 착각이다. 대통령을 탄핵한 야당에 대한 역풍이 그들을 당선시킨 것이지, 그들이 있었기에 여당이 승리한 게 아니다.

5ㆍ31 지방선거 막판 "민주개혁평화통일 세력을 살려달라"는 여당 지도부의 호소가 전혀 공명(共鳴)을 일으키지 못한 것도 시사적이다.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이긴다고 해서 반 민주, 반 개혁, 반 평화, 반 통일 세력이 창궐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격렬한 민주화 운동기를 겪은 40대조차 여당쪽으로 지지가 쏠리지 않는 것은 민심이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 운동의 훈장을 떼야 한다"는 김 의장의 상황인식은 정확하다. "구체적 정책방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언급도 전향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에는 관성이 여전하다. 범 민주세력 대연합이라는 구호가 넘실댄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올 연말이면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연합론의 중심엔 고건 전 총리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구도는 아무리 관대하게 봐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 보다는 '반 한나라당 연대', '호남과의 지역연합'이라고 하는 게 솔직할 것이다. 뻔한 정략을, 보통 명사가 된 '민주'로 포장해 다음 선거를 어찌해보려는 소극(笑劇)은 차제에 끝내야 한다.

유성식 정치부차장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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