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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신자유주의적 떡고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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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신자유주의적 떡고물 정책

입력
200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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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정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지난 역사의 어둠을 바로잡기 위한 과거사 청산작업을 하고 있다. 한때 나돌았던 박정희의 스위스 거액 구좌설 등과 관련해 반드시 조사를 해야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조사가 어려운 사람이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는 등 2인자로 활동한 이후락씨이다. 그런데 이씨는 오래 전 정치자금을 통한 치부설에 대해 떡을 만지다보면 떡고물이 손에 묻게 마련이라는 명답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한물 갔지만 경제학에도 떡고물 이론이 있다. ‘trickle down theory’라는 이론이다. trickle down이란 물방울이 흘러넘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정부가 대기업을 도와주면 대기업의 호황이 중소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못사는 사람들도 그 덕을 보게 된다는 이론이다.

●추가성장만으로 서민경제 좋아지나

우리나라에서는 말 뜻을 그대로 번역해 여적(餘滴)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너무 어색하다.

오히려 부자가 떡을 먹으면 가난한 동네사람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떡고물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 사실 재벌을 지원하면 경제성장의 떡고물이 서민한테도 간다는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은 이 이론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주장하는 떡고물 효과라는 것이 미미하고 빈부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물 간 이론이 되고 말았다.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참패 후 위기 극복을 위해 비상체제에 돌입하면서 새 당의장에 김근태 의원을 선출했다. 김 의원이 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적자라는 점에서 때늦은 감이 들며 박수를 쳐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김 대표의 취임사를 듣는 순간 떠오른 것이 엉뚱하게도 잊혀졌던 떡고물 이론이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적자, 그리고 열린우리당 내의 개혁파의 수장답게 취임 기자회견에서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라는 취임일성을 터트렸다.

개혁파의 수장이 아니더라도, 선거 참패의 근본적인 원인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라는 자유주의정권이 지난 8년간 추진한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사회적 양극화가 역대 최고수준으로 벌어져 지지기반이 돼야 할 서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처방이 엉뚱한 방향으로 새버리고 말았다. 서민경제 파탄의 원인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 수정이 아니라 여유자금을 투자해 잠재성장율을 1% 포인트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는 추가성장론을 처방으로 제시한 것이다.

김 의장의 표현을 빌리면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문제를 해결할 여력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성장을 하면 그 떡고물이 서민에게도 떨어질 것이라는 전형적인 떡고물 이론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수정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떡고물 처방에 불과하다.

●핵심 잘못 짚은 김근태 의장

긴 말이 필요없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하고 서민경제가 어려운 것이 박정희 식의 고도성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성장률이 4%대에 머물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기업들은 지난 해 4%대의 성장 속에서 사상 초유의 이윤을 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까? 지금 같은 고용 없는 성장, 저분배의 성장의 수정이 없이 추가성장을 한다고 서민경제가 좋아질까? 이 모두를 고려할 때 김 의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처방은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결국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서민경제”라는 김의장의 취임사는 립서비스일 따름이고 실제적인 내용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성장”이라는 박정희 식의 성장론에 불과하다. 달라졌다면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형 떡고물 정책이 신자유주의 떡고물 정책으로 변한 것일 따름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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