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H자가 그려진 평지에 다다랐다. 헬기 착륙장이었다. 바람이 드세서 나는 방풍 재킷을 입었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계속 걷기에 그 뒤를 따랐다.
바람에 돛처럼 부푼 방풍 재킷이 푸다다닥 소리를 내며 떨었다. 설마 했는데 그들은 절벽 위의 바위를 노리고 있었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납작 엎드려 간신히 기어 올라가 보니 바위는 두 평 남짓한 넓이로 절벽을 향해 20도는 족히 기울어져 있었다.
미끄럽기는 또 얼마나 미끄럽던지. 그래도 사방으로 멀리 서울의 불빛들이 은물결 금물결로 반짝이는 광경을 굽어보는 기분이 괜찮았다. 우리는 나란히 바위에 누웠다. 하늘은 구름으로 흐려 있었다. 초승달 쪽만 맑았다. 잠시 잡담을 하다가 시간도 꽤 됐고 비도 올 듯해 이만 내려가기로 했다. 몸을 일으키니 머리칼이 얼굴을 마구 후려치도록 바람이 불어 정신이 멍했다.
역시 엉금엉금 기어 바위를 내려갔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산길을 내려가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고 재밌었다. 오르막길만 없으면 산도 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세운 곳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산에 있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간 듯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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