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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은의 자기주도 학습] 공부에 투혼 다해 명승부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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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은의 자기주도 학습] 공부에 투혼 다해 명승부 남기자

입력
200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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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라는 글에서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했다.

“글을 잘 짓는 자는 병법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글자는 비유컨대 병사이고, 뜻은 장수다. 제목은 무찔러야 할 적국이고, 고사를 인용하는 것은 싸움터의 진지이다. 글자가 구절이 되고, 구절이 모여 단락을 이루는 것은 부대의 대오행진과 같다. 글에 리듬을 얹고 표현을 매끄럽게 하는 것은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글이 호응을 이루는 것은 봉화이며, 비유를 통한 표현은 유격대의 기병이다. 억양을 바꾸며 반복하는 일은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무찌르는 것이다. 함축을 귀히 여기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글에 여운이 있음은 군대를 떨쳐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선비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글쓰기의 과정을 전장의 모습에 빗댄 글이다. 그 속에는 가열찬 의지와 치밀한 전략들이 한 데 녹아 있다. 모든 에너지가 승리를 위해 응집되어 있으나, 동시에 여유와 지혜가 공존한다.

학생들의 가슴을 무겁게 하는 공부의 과정도 병법과 견줄 수 있겠다. 병사는 학습에 비유할 수 있다. 장수는 학생이다. 적국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다. 장수가 병사를 지휘하여 적국을 무찌르듯, 학생들도 학습을 통해 조금씩 목표를 이루어 간다. 진지를 구축함은 축적된 노하우를 공고히 하는 일이며, 대오를 정비함은 전략적 학습 플랜을 수립하는 일이다. 전장의 나팔과 북과 깃발은, 공부의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탐색하는 경쾌한 지혜를 의미한다. 봉화는 노력한 것에 대한 조응과 점검이며, 유격은 집중 학습으로 전략과목을 만드는 일이다. 전투에서 끝장을 보고자 하는 일은 야무진 마무리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일이며, 노병을 사로잡지 않는 일은 경쟁심에 파묻혀 피폐해지지 않음을 말한다. 군대를 떨쳐 개선함은 달성된 목표 앞에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2006년 월드컵 첫 경기를 며칠 앞두고 있다. 지난 월드컵은 온 국민의 가슴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우리 모두는 월드컵이라는 명승부를 통해 가슴 뻐근한 ‘감격’을 맛보았다. 그것은 단지 흥이 넘쳐 나는 축제의 장만은 아니었다. 뼈를 부러뜨려가며 마지막 에너지까지 불사르던 투혼의 현장이었다. 그 투지 없이 어떤 승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종종 인생을 전쟁터에 비유하기도 한다. 매 순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공부도 어찌 보면 하나의 축소된 전쟁이다. 경쟁자와 각축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욕망과도 싸워야 한다. 공교하고 균형 잡힌 지략이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에 맹목 되어도 위험하고, 어느 것 하나를 소홀히 해도 자칫 승리의 길과는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치열함 뒤에 항상 전체를 조망하는 여유로움을 간직하는 일이다. 근시안적 조급증은 학생들로 하여금 종종 격한 분노와 과도한 좌절에 사로잡히게 한다. 차분함을 잃어버린 선수에게 승리는 요원한 일이다.

최선을 다한 명승부는 언제나 깊은 감동을 남긴다. 학창시절이라는 기나긴 경기가 끝난 후 모든 학생들의 가슴 속에 벅찬 감격으로 추억할 수 있는 명승부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

/학습전문가ㆍ에듀플렉스 대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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