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전격 출국금지 조치한 것은 그의 혐의를 추궁할 구체적 단서가 이미 확보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검찰은 16일 오전만 해도 계좌추적 사실이 공개된 것에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범죄 혐의가 있다기보다는 풍문이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내사 차원"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확대 해석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 직후 곧바로 이 전 부총리의 출국금지 사실을 공개했다. 향후 수사가 단계적으로 진전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3월 수사 착수 직후부터 이 전 부총리 등에 대한 계좌추적을 해온 것으로 전해져 그 사이 상당한 수사 성과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전 부총리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론스타 펀드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법률회사 김앤장의 비상임 고문으로 재직했다. 외환은행 매각협상 과정에 이 전 부총리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지 않았겠냐고 의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핵심 인물들이 이 전 부총리의 경기고 후배들이다. 재경부 시절부터 이들은 이 전 부총리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부총리는 론스타 사건과 관련된 '거미줄 인맥'의 정점에 서게 된 이유이다.
금융당국 차원에서 매각 결정에 핵심 역할을 한 변양호(52ㆍ구속)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과 김석동(53) 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현 재경부 차관보)이 바로 이 전 부총리의 경기고 후배다. 변 전 국장은 론스타가 외환은행과 외자유치 계약을 체결한 직후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취득 승인을 금융감독위원장에게 요청했고, 김 차관보는 당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승인한 실무 국장이었다. 이들은 금융계에서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던 인물들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외환은행 매각은 변양호, 김석동 등 '이헌재 사단'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론스타의 자회사로 매각 작업에 개입했던 론스타 어드바이저 코리아의 유회원(56) 사장과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을 맡아 매각을 최종 추인한 정문수(57) 현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달용 당시 외환은행 부행장도 경기고 동문이다.
검찰은 이 전 부총리가 이처럼 광범위한 금융계 인맥과 막강한 위상을 주목하고 있다. 이 전 부총리가 외환은행 및 론스타 측에서 매각작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변 전 국장을 상대로 론스타 사건 관련 부분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변 전 국장의 구속과 이 전 부총리 출국금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거물급 인사를 잇따라 구속하고 출국금지까지 한 것으로 볼 때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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