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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억 저편 낯선 사랑의 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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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억 저편 낯선 사랑의 悲歌

입력
2006.06.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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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그리고 우리는) 안다. 아름다움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순간이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연애의 재발견’ 152쪽) 또 넘어짐은 상처를 남긴다는 것도, 우리는 경험으로 기억으로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새로운 아름다움에 걸려 자빠지고 마음과 몸의 상처 위에 새로운 상처를 얹는다. 이것이 욕망의 슬픈 운명이 아니라 결코 깨어지지 않을 행복임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들로 누더기처럼 기워져야 할지….

방현희씨의 첫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열림원, 9,500원)은 망가진 행복이 다른 무엇(또는 누구)인가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새로운 행복 역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표제작)을 깨우쳐가는 사람들의 힘겨운 과정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그 사뭇 교훈적인(그래서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사랑의 낯선 형식으로 새롭게 이끈다. ‘낯선 형식’이라 함은, 동성애, 양성애, 근친애 등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그 사랑의 형식들에 대한 낯섦과 불편함이라는 두터운 ‘상식’의 벽, 정상-비정상에 대한 ‘인식’의 벽을 두드린다.

젊은 날 불온한 욕망에 휩싸여 어머니를 강간한 원죄 의식에 갇혀 사는 ‘그’(표제작), 폭력에 질려 떠나버린 아내를 갈망하다 다른 여인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그를 겁탈하려다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된 ‘그’(‘말해줘, 미란’), 외사촌 여동생과의 사랑에 아파하며 그 기억 너머 자신이 아니었던 시간으로 도피하는 ‘그’(‘화이트 아웃’), 자신의 파트너였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참혹한 지경을 맞는 양성애자인 ‘그’(‘연애의 재발견’)….

그들이 어떤 일상과 경험과 계기들을 통해 자신들을 억압해 온 기억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는지는 그냥 덮어두자. 보다 먼저 벗어나고자 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윤리 너머의 섭리와 같은 의지들을 느끼자.

평론가 김형중씨는 낯선 사랑의 형식을 동원한 작가의 이 전략을 두고, 한 형태의 사랑만을 특권화한 근대의 연애관에 대한 대담한 항의라고, 그래서 이 소설집은 ‘교환 불가능한 사랑’에 포획된 존재들이 그 교환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선취하는 과정의 서사라고 분석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소설의 언어를 연계해가는 작가의 ‘낯선’ 힘이다. 그의 상당수 작품들이 품고있는 서사는 희미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놓인 휑한 여백, 시선과 인식의 이동경로 사이사이 허공처럼 방치된 공백…, 그 불친절함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공간을 열게 하고, 소설 읽기와 삶(일상) 읽기를 병행하게 한다.

그리고 서사 전개의 여러 지점에서 다른 맥락으로 던져지는 ‘몸’의 기억(마음의 기억이 아닌)에 대한 인식, 전체를 포섭하는 ‘순간’의 밀도에 대한 천착 등도 소설 전체의 내용이나 형식과는 별개로, 일상의 여러 자명한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는 2002년 ‘문학 판’ 신인작가 장편공모에 ‘달항아리속 금동물고기’라는 작품으로 당선돼 등단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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