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은 이곳이 ‘시네마 천국’입니다.”
15일 오후 전남 신안군 비금면 비금중ㆍ고교 운동장. 초여름 땡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20여명의 일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5톤 트럭 앞에서는 짐칸에 실린 영사기와 음향 장비를 내리는 장정들의 기합 소리가 힘차고, 맞은편에선 접혀있던 대형 에어스크린에 공기를 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날 단 하루뿐이지만, 이곳 주민들을 초여름 밤의 영화천국으로 안내할 비금도 최초의 ‘영화관’이 세워졌다.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CJ CGV가 산간벽지 등 극장이 없는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 최신 영화를 상영하는 ‘나눔의 영화관’이 천일염으로 유명한 섬, 비금도를 찾았다. 2004년 10월 시작해 월 2회 전국 곳곳을 누비는 ‘나눔의 영화관’은 휴가를 이용해 자원봉사를 하는 CGV 직원들과 시민단체 문화연대의 합작품으로 진행되는 무료 영화상영 행사다.
해가 넘어갈 무렵 하나 둘씩 ‘야외극장’으로 나온 섬 주민들은 어둠이 내려앉자 200개의 좌석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운동장 계단과 화단까지 가득 메웠다. 마을 곳곳에 내건 플래카드와 각 마을 이장들의 영화상영 안내방송 덕분인지 섬 전체 인구 4,100여명 중 600여명이나 모였다.
행사는 밤 10시까지인 이곳 유일의 중등학교, 비금중ㆍ고교의 야간 자율학습도 취소시켰다. 도회지에서야 극장 가는 게 이벤트 축에도 못 끼는 일상이지만, 목포까지 2시간 30분이나 뱃길을 달려야 극장 구경을 할 수 있는 이곳 주민들에겐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사(大事)이기 때문이다.
영화 상영 전 록밴드 ‘아일랜드 시티’의 공연으로 달아오른 분위기는 영화 ‘맨발의 기봉이’가 시작되자 이내 진지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기봉이가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흥얼거리다 엄마에게 타박 받는 장면, 스트레칭을 하다 방귀를 뀌는 장면 등에선 여지없이 웃음이 터져나왔고, 기봉이가 마라톤 도중 쓰러지는 장면에선 여기저기서 “으메, 으째야쓰까이~잉” 소리가 들렸다.
주민 대부분 목포 출입이 잦은 편이라 한두 번 극장 구경을 해본 사람이 많지만, 극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못해본 사람들도 상당수다. 주말이면 부모님을 도와 염전 일을 해야 하는 비금고 1학년 양희영(16)군도, 무용반 친구 10여명과 함께 야외극장을 찾은 비금초등학교 6학년 조인아(12ㆍ여)양도 극장에 가본 적이 없다. 비금도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토박이 김순화(47ㆍ여)씨도 마찬가지. “우리 아들이 학교서 영화를 해준다고 하드라고. 극장구경을 한 번도 못해봤응께 어떻게 생겼나 한 번 볼라고 나와봤제.”
전국 스크린 1,800개 시대. 모두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말하지만 문화격차와 양극화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나날이 짙어가고 있다. 유영관(46) 비금면장은 “이제 이곳 사람들도 기본적인 의식주는 다 해결된다”며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 혜택으로부터의 소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극장을 열어봤자 수요가 안 나오겠지요. 하지만 정부나 대기업, 문화예술진흥단체 같은 곳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더운 날 염전에서 종일 일하고 지칠 대로 지쳤을 텐데도 이렇게 다들 나와 있는 게 바로 그 갈증의 증거 아니겠습니까.”
비금도=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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