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기형도(사진)가 떠난 게 17년 전(1989년)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16일) ‘푸른 저녁’이 열리던 시각, 가난하고 고독했던 유년시절의 공간이자 시의 원형 무대였던 경기 광명시 실내체육관 마당 한 켠에 아담한 시비(詩碑)로 섰다.
경기 옹진군 연풍도 태생의 시인은 5살 되던 해인 1965년, 광명시(당시 시흥군 소하리)로 이사했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해설에 썼던, 시인의 ‘공격적인 허무감, 허무적 공격성’이 잉태된 공간, 청년의 시인이 ‘내 유년의 윗목‘(‘엄마 생각’)이라고 했던 그 공간.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과 ‘튀밥 같은 별들’이 뜨고, 야근수당을 받아 든 큰누이가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오’던 방죽길, 자랑할 데 없는 우등상장으로 종이배 접어 띄우던 개천이 흐르던 곳.(‘위험한 가계ㆍ1969’)
사랑으로 끊임없이 절망하면서도 그 절망마저 사랑으로 껴안았던 그의 시비에는 ‘어느 푸른 저녁’이 새겨졌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중략)”
그 시의 풍경처럼, 시인의 많은 문우들이 시비 제막행사를 지켜본 뒤 조금씩 흔들리며 멀어져 갈 때 맑겠다던 하늘은 금세 비라도 퍼부을 듯 부어있었다. 그리고 되돌아본 어둠 속,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린 듯도 했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