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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월드컵 열기 없는 곳에서 축구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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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월드컵 열기 없는 곳에서 축구 즐기기

입력
2006.06.1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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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후에 열리는 경기가 한국에서는 한밤중에 중계된다면, 지금 내가 머무르는 캐나다에서는 아침 일찍 그 경기를 볼 수 있다. 까마득한 시차만큼이나 2006 월드컵을 보고 느끼는 감정도 별다르다. 캐나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아이스하키이고, 야구와 농구, 미식축구 정도가 그 뒤를 잇는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헬멧과 케이지를 쓰고 스틱을 든 채 오가는 아이들은 종종 볼지언정 무리를 지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축구를 하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대중적인 열기가 거의 없어 월드컵이 열렸다는 사실조차 실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른 새벽 홀로 일어나 경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니 색다르다. 신체 중 가장 불완전한 발로 탄성의 생명력을 가진 공을 따라 좇는 열정의 사냥꾼들, 인생이 그러하듯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승패를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 축구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같이 목청 높여 응원을 하고 승리의 축배를 나눌 사람들이 없어 섭섭한 건 사실이지만, 짐짓 '과잉'하게 느껴지는 월드컵의 열기에 휩쓸려 정작 축구 자체를 즐기지 못할 위험에서 벗어나있어 홀가분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또한 경기만큼이나 재미있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월드컵에 대한 반응과 태도다. 어쨌거나 월드컵은 전 지구적인 축제인지라 방송이나 신문에 월드컵에 대한 보도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각 팀의 전력이나 경기 결과에 대한 해설보다는 월드컵과 축구의 정치 사회 문화적 의미를 꼼꼼히 분석하는 특집 기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국의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이미 곳곳에 수준 높은 프로리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세계적인 국가대항전을 벌이는 이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의미 있고 새롭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프랑스팀의 전력이 1998년 우승컵을 안았을 때만큼 대단한가, 누가 최전방 공격수로 서느냐가 궁금한 만큼 티에리 앙리가 등장하는 반인종주의 캠페인이 흥미롭다. 어느 나라를 가릴 것 없이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그라운드라고 예외가 아니다. 월드컵 개최지인 독일에서 스킨헤드에 의해 자행되는 유색인종에 대한 폭력을 비롯하여 '나치 저먼'의 역사를 다룬 기사도 인상적이다.

축구는 어느 문명 어느 민족에도 그 원형에 가까운 놀이가 있는 원시적인 게임이다. 로마의 하르파스툼이 있는가 하면 김유신과 김춘추의 축국이 있다. 하지만 축구는 누구나 쉽게 즐길 만큼 단순하면서도 마냥 단순할 수만은 없는 스포츠다. 다른 어떤 스포츠도 축구처럼 혁명과 전쟁의 도화선이 되거나, 마피아와 독재자를 동시적으로 열광시킬 수 없다.

물론 축구를 즐기는 방식이 꼭 심각하고 진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외부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소식을 접할 때마다 문득 씁쓸해지기도 한다. 세계의 무대에서 힘과 기량을 펼쳐보이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타인의 평가와 성적조차도 진정으로 축구를 즐기는 잣대가 될 수 없다.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다가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가? 멋진 플레이를 즐기고 힘껏 박수를 보내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을 것인가?

김별아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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