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월드컵이 개막 일주일을 맞았다. 그러나 대륙별로 월드컵이 그려 놓는 풍속도는 각양각색이다. 개최국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은 날로 고조되는 축구 열기에 휩싸여 있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은 말 그대로 월드컵 무풍지대다.
그렇다고 미국이 ‘축구 약소국’도 아니다. 비록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0-3의 참패를 당하긴 했지만 미국의 FIFA 랭킹은 당당히 5위. 그러나 자국 대표팀의 순위는 고사하고 심지어 현재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 한국은 잠실 야구장 500여명등 '광풍 속 그늘'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도 축구가 프로 스포츠로서 영역을 넓혀 가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45분씩 전후반으로 나눠 진행되는 축구의 ‘태생적 한계’ 는 광고를 초단위로 쪼개 판매하는 미국의 프로 스포츠 현실을 감안하면 매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4대 프로 스포츠는 메이저리그(MLB) 프로풋볼(NFL) 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NHL). 당연히 미국 언론에선 스포츠 메인 기사도 월드컵이 아니다. NFL은 지난 2월 막을 내렸지만 NBA와 NHL은 지금 한창 우승컵 쟁탈전 중이다. 플로리다주는 NBA의 마이애미 히트가 14일(이하 한국시간) 달라스 매버릭스와의 3차전서 4쿼터 중반 12점차 열세를 딛고 역대 NBA에서도 손꼽힐 만한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거뒀다며 호들갑이다. 좌석에 따라 티켓 가격도 18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비싼 편이지만 1차전부터 매 경기 만원사례다. 암표 값은 무려 2,000달러까지 치솟았다는 후문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NHL 아이스하키장도 발 디딜 틈이 없다. 1승3패로 벼랑 끝에 몰렸던 캐나다의 에드먼튼 오일러스가 15일 연장 혈전 끝에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을 4-3으로 꺾고 승부를 홈링크에서 열리는 6차전으로 끌고 가면서 양팀 모두 흥분상태다. 시즌이 한창중인 메이저리그도 이날 뉴욕 양키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 5만3,500여명이 관전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반면 축구의 메카로 꼽히는 유럽과 남미 못지않게 한국은 월드컵 열기로 뜨겁다. 이로 인해 다른 스포츠 종목들은 완전 찬밥 신세다. 프로야구와 여자 프로농구는 프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토고전이 열렸던 지난 13일 잠실 SK-두산전에 입장한 순수 야구 관중은 500여명에 불과했고, 춘천 우리은행-신세계전 여자농구 관중은 여기에도 못 미쳤다.
비인기 종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아마 스포츠 관계자들은 17일 소년체전 개막을 앞두고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의기소침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승택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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