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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비포 애피타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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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비포 애피타이저

입력
2006.06.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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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랍권 나라들 가운데서도 특히 음식 문화가 발달한 레바논의 요리를 먹게 되었다. 듬뿍 듬뿍 담은 음식을 손님에게 내는 것이 그들의 예라고 들은 바가 있었기에 과식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식탁에 앉았다.

주방 쪽에서는 이미 향신료 섞인 양고기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기 시작했는데, 식탁에 처음 올라온 것은 의외로 ‘야채 모둠’이었다. 야채 모둠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종류의 야채를 접시에 담은 것뿐이었다. 향신료나 양고기 냄새와 전혀 상관이 없는 야채 접시에 의아해 하는 내게 현지인 요리사는 “입안과 뱃속을 준비 시켜라”고 했다.

잘 익은 풋콩, 싱싱한 토마토 그리고 살짝 초 절임한 붉은 무와 올리브를 오독오독 씹노라니 더 큰 시장기가 찾아왔다. 앞으로 펼쳐질 화려한 향기의 고기 요리에 대비하여 입안을 더 싱싱하고 담백하게 준비해주는 효과, 이것을 나는 전채 요리 전에 먹는 ‘비포 애피타이저(Before appetizer)'라고 이름 하겠다.

▲ 프랑스-코코넛 크림을 올린 차가운 콩 수프

전채요리 이전에 먹는 ‘비포 애피타이저’의 결정판은 프랑스 요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말로는 ‘오르되브르’라고 부르는데, 본격적인 식사를 맛보지 않고도 요리사의 실력을 점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오르되브르는 보통 동전만한 한입 크기에서부터 차가운 수프 한 모금까지 그 형태와 조리법이 무궁무진한데, 버터와 육수로 만들어진 진한 맛이 특징인 프랑스 요리를 먹기 전에 반드시 강조되어야 하는 순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날씨가 더워지면 버터로 요리한 프랑스 정찬이 입에 무겁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입 안을 시원하게 하고, 식욕과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오르되브르 메뉴 연구에 셰프들은 바빠진다. 파이 반죽을 과자처럼 구워서 다진 버섯과 올리브를 볶아 만든 스프레드를 올리는가 하면, 색종이를 접 듯 말아낸 오이 속에 차가운 토마토와 양파를 갈아서 허브와 함께 채워낸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철 오르되브르는 콜드 수프. 차갑게 식힐수록 더 제 맛이 나는 매력적인 요리다. 수박이나 오이를 시원하게 갈아서 육수와 섞고 통후추를 으깨어 더하거나 스페인 스타일로 토마토와 피망을 우려 만든 국물에 각종 야채를 넣고 찬 야채수프를 만들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여름에 먹을 수프는 신선한 느낌을 강조할 수 있도록 녹색을 띄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아스파라거스나 완두콩을 갈아 만드는 방법이 있다.

버터를 두른 팬에 완두콩을 볶다가 소금 간 정도만 하고서 약간의 물을 붓고 슬쩍 익힌 다음, 블랜더에 곱게 갈아서 육수와 생크림으로 농도를 조절 해가며 다시 따뜻하게 데우면 된다. 이 수프를 원하는 온도만큼 차게 식혀서 코코넛 밀크로 만든 크림을 살짝 올리면 전형적이고도 우아한 프랑스식 오르되브르가 된다. 관건은, 아주 조금만 상에 내어야 한다는 것! 오르되브르의 역할은 입 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것이므로 배를 채워 버리면 아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 일본-참깨 소스를 두른 연두부

일상에 지친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저녁을 해결하려 요릿집에 들면, 우선 맥주 한잔부터 주문한다. 어떤 밥집들은 아예 두 모금 정도에 홀딱 마시기 좋은 작은 맥주잔을 세팅해 놓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회나 초밥 정도로만 알고 있는 일본 음식도 가정식으로 들어가게 되면 볶고, 조리고 지져서 그 맛이 진해진다. 라면이나 우동을 포함한 국물 음식을 봐도 그 육수 맛을 내기 위해 한참을 고아 만들기 때문에 전반적인 요리의 식감이 가볍지 않은 편. 맥주 한잔에 간단하게 만든 찬 음식으로 입안을 정리하고 먹어야 더 맛있는 요리들이 많다는 얘기다.

각종 초절임이 발달한 나라인지라 ‘비포 애피타이저’를 일본식으로 만들기란 어렵지 않다. 잘게 썬 잎 야채나 살짝 데친 줄기 야채에 초절임한 무나 오이를 곁들여도 좋고, 아작하게 채를 친 무를 초절임 하여 연어알과 함께 작은 종지에 담아 낼 수도 있다. 냉장고에서 차갑게 만든 마를 갈아서 성게 알을 점 찍 듯이 조금 올리고 맨 김과 간장을 가니쉬로 곁들이면 위장을 보호해주는 역할까지 하니, 입맛도 돌리고 속도 차릴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두부를 이용한 각종 한입 꺼리들도 다양한데, 두부의 담담한 맛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소스를 차게 곁들이면 더 맛있겠다. 참깨를 블랜더에 담고 물을 조금씩 더해가면서 갈아 준 다음, 간장과 일본 된장 그리고 설탕과 식초로 맛을 내면 고소한 소스가 되니까 이용해 보자.

연 두부를 한 술 떠서 명함만한 접시에 담고, 새콤 고소 시원한 참깨 소스를 두른 다음 얇게 썬 오이나 오이와 비슷한 자잘한 야채로 장식을 해준다. 요것 한 입에 맥주 몇 모금이면 발바닥이 닳도록 종일 도쿄 바닥을 헤맨 영업사원의 넥타이가 느슨해진다. 이어 상에 오르는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덤!

밤새 축구 보고, 곧 장마는 시작되고 피로가 겹쳐 입맛을 잃기 딱 좋을 시기다. 매일 색다른 요리를 준비할 수는 없지만 식전에 내는 ‘비포 애피타이저’ 하나로 맛에 변화를 주면 어떨까. 본격적으로 밥과 국을 먹기 전에 잘게 자른 유부를 새콤한 무생채와 섞어서 천천히 먹든지, 작은 잔에 차갑게 담은 콩국을 마시든지 한다면 매일 같은 된장찌개도 어제와는 조금 다른 맛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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