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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커버스토리 - 야간 산행 '야성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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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커버스토리 - 야간 산행 '야성을 깨운다'

입력
2006.06.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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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오르는 산. 나이 지긋한 산악인들로부터 “산을 너무 만만히 본다”고 질책 받을 일이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밤의 산을, 게다가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왜 오르려 하느냐고 따지듯 물을 것이다.

하지만 야간산행의 묘미는 바로 그 어둠의 길에 있다. 최근 들어 ‘암행(暗行)’의 매력에 빠진 ‘야산’팬들이 꾸준히 늘고있다.

수년 전 웰빙 바람을 타고 급격히 늘어난 산행인구 덕에 주말이면 서울 근교의 산들은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출근길 꽉 막힌 도로마냥 등산로도 곳곳에서 정체되기 일쑤. 산행의 묘미가 반감된다. 그래서 찾은 호젓한 산행의 방법이 밤의 등산이다.

어둠의 장막이 쳐진 산길. 평소에 자주 올랐던 곳이라도 밤이 되면 아주 낯선 세상이 된다. 시각이 움츠러들며 촉각, 청각 등 다른 감각이 기지개를 편다. 잠자고 있던 ‘야성’이 살아난다.

야간산행은 호젓함 외에도 야경이라는 커다란 매력을 쥐고있다. 불야성을 이룬 도시의 야경. 많은 산들을 품에 거느린 서울의 특권이다. 낮에는 그저 위압적이기만 했던 고층 빌딩과 아파트 군락들이 밤이 되자 빛으로 휘황한 그림을 그려낸다. 불빛 하나하나가 찍어 만든 점묘화다. 발아래 내려다본 삶의 터전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위험하지만 그 이상의 매력을 지닌 야간산행에 도전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 ‘야간산행’ 회원들이 고맙게도 길을 안내했다.

수락산=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PM 09:00

지하철 수락산역 1번 출구. 수락산 야간산행 집결지에 도착했다. 처음 만난 이들과 반갑게 악수. “부디 살아서 내려올 수 있게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PM 09:30

김밥, 물, 간식 등 ‘생필품’을 사들고는 드디어 산속으로 들어섰다. 숲은 어두웠다. 헤드랜턴 불빛은 흔들리고 묘한 긴장감 속에서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듯 발걸음을 옮겼다. 풀벌레 소리, 소쩍새 울음이 귀의 감각을 깨우고 한자락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긴장시킨다.

AM 00:10

허덕허덕 어둠속을 오르고 또 올랐다. 이제 도솔봉이다. 발아래 펼쳐지는 상계동의 야경. 눈부시다. 바로 이 맛에 밤에 산을 오르는구나. 준비한 간식으로 조촐한 한밤의 파티를 열었다. 잠시 몸을 쉬고는 다시 행군. 야산산행은 군대 시절 야간행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AM 01:20

드디어 정상이다. 밤이 깊어지니 불빛도 많이 잦아들었다. 저음으로 웅웅거리는 저 소리는 잠자는 도시의 코골이인가. 바위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본다. 산정에서의 휴식, 이 여유로움이란. 일행 중 누군가 별똥별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AM 02:40

수락산 최고 난코스인 홈통바위다. 30여 m 되는 높이의 가파른 암벽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가야 한다. 조심 또 조심. 잔뜩 긴장하고 내려가는데 어두워 밑이 안보이니 오히려 겁이 덜 난다.

AM 05:30

뿌연 안개 때문에 일출이 힘들어보인다. 야간산행의 큰 묘미중 하나가 산에서 맞는 해돋이라던데 아쉽다. 여명으로 사위가 밝아온다. 도시가 잠을 깬다. 의정부 동막골로 하산했다.

AM 06:00

버스를 타고 처음 산에 올랐던 상계동 수락산 입구로 이동했다. 멋진 산행의 마무리, 새벽 하산주가 빠질쏘냐. 산행에서 못다한 수다가 푸짐하게 펼쳐졌다. 야간산행의 매력이 뭐냐고 물었다. 누군가 “몰입”이라고 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 서울의 산들 야경의 특색

큰 산이 있고 큰 강을 옆에 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청계산 등 서울을 감싸고 선 산자락들은 화려한 야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야간산행에 딱 맞는 곳들이다. 저마다 다른 산행의 재미가 있는 산들은 야경 또한 각기 다른 풍경으로 보여준다. 장엄한 불빛의 바다를 보여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골짜기에 옹기종기 불빛을 모아 작은 호수처럼, 정원처럼 야경을 담아내는 곳도 있다.

서울의 각 산들이 품은 야경의 특징을 안내한다. 북한산과 도봉산은 그 명성에 걸맞은 야경을 품고 있지만 국립공원인 탓에 법적으로 야간산행이 금지됐다. 단속에 걸릴 경우 1차 위반 20만원, 2차 40만원, 3차 6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 수락산

수락산의 야경은 거대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하다. 방학동ㆍ상계동의 아파트 군락, 의정부 시가지, 별내면의 희미한 불빛 등. 각 능선은 저마다의 색다른 야경을 품고 있다. 다음 카페 ‘야간산행’ 회원인 이상돈(35)씨는 “수락산의 야경에는 섬의 이미지가 있다. 수락산 야간산행은 야경의 섬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항해와 같다”고 설명했다.

♠ 불암산

불암산은 수락산 보다 낮지만 야경은 훨씬 장대하다. 삿갓봉이라 불리는 정상에 서면 노원과 중랑은 물론 4대문 안의 도심과 강남 일대의 야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구리, 남양주, 덕소의 불빛까지도 보인다.

♠ 관악산

서울 강남의 야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야경의 명당은 연주대. 시야가 넓게 트여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강물에 반사된 도심의 야경이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한다.

♠ 삼성산

국기봉 정상에서의 전망이 뛰어나다. 서울의 야경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불의 바다다. 멀리 휘돌아 나가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긴 광선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불빛까지 더해 환상적이다.

♠ 청계산

바위산이 아닌 흙산. 숲이 울창해서 밖이 잘 안보인다. 만경대에 올라서야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과천의 서울랜드, 성남과 분당, 안양의 야경이 펼쳐진다.

♠ 우면산

야트막해서 산책 삼아 오르기 편하다. 소망탑 인근이 야경에 좋다. 정상은 통제구역이다.

♠ 대모산ㆍ구룡산

2개의 산이 한 능선으로 이어져있다. 어느 산을 오르거나 대개 두 개의 산을 모두 거치게 된다.

♠ 아차산

한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강물에 반사되는 도심의 불빛이 황홀하다. 강 건너 강동, 송파의 불빛이 진하게 다가온다.

■ 야간 산행/ 주의할점

야간산행은 위험하다. 그래서 안전이 최우선이다. 아무리 자신 있어도 단독산행은 금물이다. 최소 2~3명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다. 산행 경험이 풍부한 리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등산로를 낮에 미리 답사해 길을 완전히 익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랜턴은 2개 정도 준비하는게 안전하다. 램프는 머리에 쓰는 헤드램프가 편하다. 시중 등산용품점에서 3~5만원이면 살 수 있다. 여분의 건전지도 꼭 준비하자. 서울 근교의 산들은 대부분 바위 산이라 미끄러지기 쉽다. 일반 운동화는 위험하니 등산화를 착용하자. 길을 잃었을 때를 대비해 나침반, 휴대폰, 호루라기 등도 지참해야 한다.

산속의 밤은 여름이라도 추울 수 있기에 긴 소매 옷이나 방풍재킷 등을 챙기고 간단한 비상식량과 물(500ml 2, 3개 정도)도 여유 있게 준비하자.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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