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새벽 경기도 당연히 봐야지. 그런데 출근은 어떡하나.”
14일 직장인들은 지난 밤 짜릿한 역전승의 감동을 되새기며 한껏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승리를 자축하는 술잔을 새벽까지 기울이느라 아침까지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점수내기에서 진 직장인들도 결과에 관계 없이 모두 기쁜 표정이었다.
이제 직장인들의 관심은 프랑스와의 다음 경기로 쏠리고 있지만 ‘행복한 고민’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경기가 월요일인 19일 오전 4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방학 중인 대학생이나 출ㆍ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자영업자와는 달리 마음 놓고 경기를 보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대다.
그렇다고 4년 만에 만끽하는 태극전사의 승전보를 잠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직 며칠 시간이 남아있지만 직장인들은 벌써부터 월드컵을 즐기기 위한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읍소형 회사 대표나 부서장에게 하소연하는 방법이다. 서울 역삼동 C벤처회사에 다니는 김정민(28)씨는 16일 직원 전체가 모이는 회식자리에서 출근시간을 오전 8시에서 10시로 늦추도록 사장에게 직접 건의할 생각이다.
김씨는 “대기업이야 직원이 워낙 많아 출근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겨우 20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장이 결단을 내리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며 “분위기를 어떻게 유도해야 할지 동료들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얌체형 영업직 종사자들은 한결 느긋하다. 일단 출근해서 얼굴 도장을 찍고 외근을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서울 H자동차 영업사원 최정호(34)씨는 “19일 오전에는 어차피 고객을 제대로 만나기 어려울 테니 근처 사우나에서 한숨 잘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속형 독신 남녀에게는 집에서 경기를 혼자 시청하는 것이 고역이다. 그렇다고 새벽 일찍 거리응원에 나서자니 출근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크다. 이승락(30)씨는 회사 근처 찜질방을 택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응원 기분을 낼 수 있고 누워서 편안하게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안성마춤이다. 이씨는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아침에 출근해서도 가뿐할 것 같다”고 말했다.
표준형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D식품회사 직원 허정모(37)씨는 “사무직이라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회사에 양해를 구하기도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경기 당일 푹 자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면 되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활동형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서울광장 청계광장 상암월드컵경기장 등에서 열리는 야외응원전에 참여하겠다는 직장인도 상당수다. 신동민(30)씨는 19일 새벽 양복과 구두를 따로 챙겨 들고 서울광장에 나갈 계획이다.
신씨는 “웬만하면 집에서 TV로 시청하려고 했지만 토고와의 멋진 경기를 보고 나서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며 “출근 복장을 따로 챙겨야 하지만 그 정도 불편을 못 참겠느냐”고 반문했다.
배려형 회사가 출근시간을 조정해줘 다른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I생명은 신청자에 한해 한국전이 열리는 19일 출근시간을 낮 12시로 3시간 늦추도록 했다. S커뮤니케이션즈의 일부 부서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출ㆍ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게 됐다. I생명 관계자는 “마음껏 응원하는 것도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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