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만 없었으면 지금쯤 복학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텐데….”
경기 연천군 최전방 경계초소(GP)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19일로 1년이 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참혹한 소식은 차츰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지만 그 일로 둘째 아들(고 차유철 상병ㆍ당시 22)을 잃은 아버지 차정준(53ㆍ순천전자고 행정직)씨와 그 가족들은 아직도 씻어지지 않는 충격과 고통에 싸여있다.
14일 전남 광양시의 자택에서 만난 차씨는 아들이 죽기 얼마 전에 보내온 편지를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아들은 지난해 어버이날 직전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어마어마한 사랑에 부담을 느껴 말을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 사건 이후 차씨 집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부인 최영애(49)씨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지금은 상태가 좋아졌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통증으로 아직도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동생과 늘 붙어 다니던 형 유광(25)씨도 한동안 방황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올해 초부터는 일부러 활달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주위 사람들한테 농담도 먼저 하고요.” 그러나 이런 차씨의 노력은 지난달 맏딸 지은(27)씨의 결혼식에서 무너졌다.
“딸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는데 둘째 녀석 생각이 갑자기 나는 거예요. 여기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아버지는 시집 가는 딸보다 먼저 눈물을 흘렸고, 부인과 딸도 애써 참던 울음을 터뜨려 결혼식장을 흠뻑 적시고 말았다.
차씨 가족의 고통은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군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당시 아들을 비롯한 희생 장병들은 적 침투상황으로 판단하고 대처하다가 죽었어요. 정부가 이들을 전사자로 대우할 때까지 명예회복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순직’이 아닌 ‘전사’가 마땅하다는 얘기다. 차씨는 “단지 범인이 적이 아닌 아군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사처리를 못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희생자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희망했다.
합당한 대우가 더 많은 보상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차씨를 비롯한 대다수 부모들은 보상금이 더 나오더라도 병영환경 개선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차씨는 “우리는 아들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차씨는 청와대와 국방부에 3차례 청원을 낸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수십 차례 병영환경 개선을 위한 의견을 냈다. “지난해 GP를 방문했을 때 그 끔찍한 근무 환경이 아들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지요. 최근 환경이 개선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차씨는 다음 주말 다른 희생장병 부모들과 만나 명예회복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들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혔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묻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은 듯했다.
광양=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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