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테 국립공원에 간 것은 꼭 10년 전이었다. 우리 일행은 LA 공항에 내리자마자 렌트카 회사부터 찾았고, 허름한 밴 하나를 빌려 뒤 트렁크에 등반 장비들을 가득 채워 넣은 다음 뒤도 안 돌아보고 요세미테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는 꼭 보름 후, 갔던 길을 되짚어 한국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우리가 했던 짓이라곤 단 하나, 요세미테의 거대한 바위에 매달려 있는 것뿐이었다. 남들 눈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미국 여행이다. 하지만 ‘바위꾼’들에게는 평생의 꿈이다. 기독교 신자들의 메카가 예루살렘이라면, 암벽 등반가들의 그것이 요세미테인 까닭이다.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도로를 족히 여섯 시간쯤 달렸을까. 스카이웨이를 연상시키는 산중 도로를 굽이굽이 에돌아 요세미테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휴게소에 도착했을 즈음이다. 달빛 교교한 요세미테 계곡의 한 가운데쯤 어딘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느낌을 주는 거대한 존재가 우뚝 솟아있었다.
바로 엘 캐피탄(El Capitan, 2,695m)이다. 우리는 ‘엘캡’(약칭)에 바투 붙어있는 유명한 야영지 ‘캠프4’에 슬리핑백을 펼쳐놓자마자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나는 꿈에 그리던 엘캡을 제대로 감상하려고 올려다보다 그만 뒤로 나자빠졌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야말로 육체적으로 나자빠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뒤로 벌렁 나자빠져도 엘캡의 전모는 한 눈에 파악되지 않았다.
엘캡은 단일한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다. 요세미테 계곡의 아름다운 초지 위에 우뚝 솟아있는 이 영물(靈物)은 바위만의 순수한 고도차이가 1,086m에 달한다. 무려 1Km를 넘어서는 수직의 바위벽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사진으로 보아도 원근감을 느낄 수 없어 실제의 느낌을 전달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설명해보자. 서울 여의도의 63빌딩 밑에 가서 그 건물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어지러움을 넘어 아찔함이 느껴질 뿐이다. 63빌딩의 수직 표고차는 264m다. 그렇다면 엘캡은? 63빌딩 네 채를 수직으로 쌓아놓은 형국이다. 맙소사, 인간이 저기를 올라갈 수 있다고? 엘캡을 처음 봤을 때 내가 내뱉은 탄식이다. 엘캡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바위 사면을 ‘노즈’(Nose)라고 부른다. 이 엘캡의 노즈를 처음 올라 거벽 등반의 시대를 활짝 열어 젖힌 사람이 바로 워렌 하딩(1924~2002)이다.
거벽 등반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거벽 등반의 원어는 영어의 ‘Big Wall Climbing’이다. 말 그대로 ‘거대한 벽’에 오르는 등반인데, 암벽 등반의 한 갈래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본래 패러다임을 훌쩍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다. 실제로 기껏해야 인수봉이나 선인봉에 매달려 왔던 내게 엘캡의 자태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허락한다면, 그것은 ‘전혀 새로운 장르’에 속한다.
기존의 암벽 등반에서 쓰이던 기술과 장비로 거벽에 도전한다면 백전백패를 면할 수 없다. 거벽 등반가들은 수직 혹은 오버행의 바위절벽에 매달려 몇날 몇일 동안 등반을 계속한다. 대표적인 거벽 등반 장비가 ‘포터렛지’인데, 우리 말로는 ‘허공 침대’라고나 옮겨야 될 듯 하다. 거벽 등반가는 수직의 절벽에 이 허공 침대를 매달아놓 잠을 잔다.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등반 방식이다.
워렌 하딩은 1924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크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군 비행기 정비공으로 2차 세계대전을 치룬 다음 측량 부문 건설기사로 일하다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더 이상 건설 현장에 머무를 수 없게 된 그는 우연히 요세미테 국립공원에 들렀다가 ‘운명의 바위’와 마주친다. 바로 엘 캐피탄이다. 당시 그 바위 절벽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하딩은 엉뚱한 결심을 한다. “내가 저 바위 절벽에 올라보겠어!”
그의 엘캡 등반은 1957년에 시작된다. 수직의 바위 절벽에 피톤을 때려 박으며 점차 고도를 높여가는 원시적인 형태였다. 이 등반에는 무려 18개월이 소요된다. 그리고 마침내 1958년 11월 12일, 그는 마지막 12일 동안을 바위 절벽에 매달린 채 등반을 계속한 결과, 675개의 피톤과 125개의 볼트를 사용한 끝에, 엘캡의 정상에 올라서고야 만다.
현대 거벽 등반의 시대가 열리는 역사적 순간이다. 이때 정상에 올라선 하딩의 제 1성이 몹시도 인상적이다. “마지막 볼트를 설치하고 정상에 올라섰을 때, 내가 엘캡을 정복했는지 엘캡이 나를 정복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엘캡이 당시의 나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오른 코스를 ‘노즈’라고 명명했다.
미국은 역사와 문화가 천박한 나라다. 하지만 이 천박한 신생 공화국도 역사에 기여한 바가 있다. 현대미술사에서 팝아트가 해낸 역할, 현대음악사에서 재즈가 해낸 역할, 바로 그런 で弩?해낸 것이 미국의 거벽 등반이다. 그리고 거벽 등반의 개척자들 중에서도 마땅히 굵은 글씨로 표기되어야 할 이름이 워렌 하딩이다.
그는 또한 미국 히피 문화의 등반사적 대변인으로서 신랄한 가치 전복적 발언들을 일삼아 왔다. 전세계 등반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워렌은 언제나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곤 했다. “등반? 그런 건 미친 놈들이나 하는 짓이죠. 아무런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어요. 마치 우리들의 인생처럼.”
▲ 볼트 남용으로 '요세미테의 무법자' 별명도
요세미테는 전세계 암벽 등반가들의 메카다. 널리 알려져 있는 등반 루트만도 1,000개를 훌쩍 넘는다. 워렌 하딩은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고 위험한 루트 30여개를 개척하여 스스로 그 루트명을 지었다. ‘노즈’ ‘월 오브 더 얼리 모닝 라이트’ ‘이스트 버트레스 오브 미들 캐시드럴’‘로스트 애로우 다이렉트’ ‘하프돔 남벽’ 등이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볼트의 지나친 남용으로 자연을 많이 훼손했다 하여 ‘요세미테의 무법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자유 등반의 옹호자인 로열 로빈스와 벌인 ‘등반 윤리 논쟁’은 오랫동안 현대 등반계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워렌 하딩은 ‘심각한 등반’을 맘껏 비웃은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유일한 자서전 ‘다운워드 바운드: 암벽 등반에 대한 미친 가이드’(1975)는 이른바 요세미테 타입 등반가들의 시니컬한 교과서로 널리 읽힌다. “등반가의 제1 요건이요? 어리석음입니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고통에 처하게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리석어야만 하지요.” 기성의 가치관을 통렬히 비꼬는 히피식 농담이다.
그는 심지어 죽음과 마주하고서도 한없이 가벼운 태도를 취했다. 1968년 갤런 로웰과 함께 했던 하프돔 남벽 초등 당시 그는 절벽에 매달려 3일 동안이나 비에 젖은 채 고립되어 있었다. “너무 지쳐 죽음조차 관심 밖이었습니다. 저는 종교인도 아니어서 두려울 것조차 없었죠. 저를 공격할 악마들이 없었으니까. 그냥 단순히 죽는 거였어요.” 아이러니컬한 것은 당시 조난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구조대를 만들어 그를 살려낸 사람이 바로 평생의 라이벌 로열 로빈스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 등반의 메피스토펠레스’는 가까스로 생환한 다음 제일 먼저 와인을 홀짝이며 그저 “운이 좋았네?”라며 껄껄 웃어댔을 뿐이다.
산악문학작가 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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