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분(최남선)은 진정한 민족주의자요 애국자입니다."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이 발행하는 월간지'우리 길벗'(발행인 서영훈) 6월호에 실린 대담에서 강영훈(84) 전 국무총리가 한 말이다. 깜짝 놀랐다.
눈이 의심스럽고 귀가 미덥지 않았다. 강씨는 대담에서 관동군이 세운 만주 건국대(경제학과) 학생 시절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ㆍ1890~1957)을 교수로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의 이야기가'내가 학병으로 나가라고 하는 것은 천왕이나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을 위해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망한 것은 힘이 없어서다. 우리 민족에게 군사력이 없어서 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군사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 그 분의 학병 지원 찬성 때문에 특히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분의 행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잘못된 평가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 분의 행적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1928년 조선총독부의 한국사 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 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39년 만주 괴뢰국 인재양성기관인 건국대 교수, 일본 학도병 출전을 줄기차게 강권하고 일본과 조선의 뿌리가 같다(日鮮同祖論)고 주창….
■이 모든 일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해서 한 일이란 말인가? 그래서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으로부터"독립선언서가 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이런 자가 도리어 일본에 붙은 역적이 되다니 만번 죽어도 그 지은 죄는 남을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해방 후에는 반민족행위자로 처벌을 받았는가?
무슨 하느님이 침략전쟁을 특정 민족에게 군사훈련 기회로 준단 말인가? 육당은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를 제 입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제군! 대동아의 성전(聖戰)은 세계 역사의 개조이다. 바라건대 일본 국민으로서의 충성과 조선 남아의 의기를 발휘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진하기를 바라는 바이다"(1943년 매일신보에 쓴'가라! 청년 학도여'에서).
■ "올곧고 강직한 공직자로 살아온 국가 원로"가 이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곤란하다.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낼 때까지 군사정권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미지가 좋은 것은 그리 극악한 처신을 보인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장을 지내신 분이 그리 말씀하시면 참 난감하다. 잘 모르고 하신 말씀이면 공부를 더 하시면 될 것 같고, 잘 알고도 하신 말씀은… 설마 아니겠지.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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