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앞이다.
경기시작 한시간 전인 밤 9시, 이곳은 서울 곳곳에서 몰려나온 인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보며 전하는 관전기가 다를 것이고, 길거리에서 이렇게 수많은 인파들과 함께 대형 화면을 바라보며 함께 목소리를 합쳐 응원을 하며 쓰는 관전기가 다를 것이다.
경기의 흐름이야 현장에 나가 있는 전문가들과 현지 취재 기자들이 따로 자세하게 전할 것이다. 나는 이곳 광화문 거리에 운집해 있는 수많은 인파가 뿜어내는 저 뜨거운 응원의 열기와 분위기를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대형 전광판의 경기 흐름과 함께 실시간의 느낌 그대로 전하려 한다.
대체 이곳에 모인 인파가 얼마나 될까. 문득 저 끝없는 사람의 수가 궁금해진다. 광장에 모인 관중은 어림잡아도 수십만이 넘을 듯싶다. 그래, 우리는 오늘 이 시간을 지난 4년 전의 그 영광의 시간처럼 기다려왔다.
아까 높은 건물 위에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광장 이곳 저곳에 비치한 대형 화면 속에 경기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모인 광장 자체가 또 하나의 붉은 경기장 같은 느낌이다.
그런 시청 앞 광장에서 나는 지금 지구 반대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2006 월드컵 G조 첫 경기인 우리나라와 토고와의 경기를 순간의 환호와 순간의 탄식에 실어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전한다.
‘승리를 확인하러 우리가 왔다’. 우리의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그곳 스탠드에 아로새긴 붉은악마의 테마다. 4년 전 우리는 ‘Pride of Asia'를 새기고, ‘꿈은 이루어진다’를 아로새겼다.
드디어 긴장 속에 휩슬이 울리고, 전반전의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루어질 때마다 광장의 분위기도 떠나갈 듯, 때로는 무너져내리듯 환호와 탄식이 엇갈린다.
그러다 전반전 30분이 경과할 무렵 단 한번의 긴 패스에 우리의 수비진이 무너지며 토고의 쿠바자가 단독 찬스에서 슛한 볼이 우리의 골문을 갈랐다. 그 동안 우리가 기다린 게 정녕 이것이었나, 광장은 일순 깊은 탄식에 잠긴다.
그러나 공은 둥글다. 후반전의 시작과 함께 광장은 알 수 없는 조급함과 초조함이 또 다른 분위기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경기는 더욱 손에 땀을 놓을 수가 없다. 우리 모두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친다.
거듭 밀고 들어가는 우리의 공격이 연신 토고의 수비선에 저지당한다. 이곳 광장을 관통하고 흐르는 강물이 막혀 흐르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러다 후반 10분 박지성 선수가 골문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는 순간 토고의 수비수 아발로가 깊게 발을 건다. 주심은 위험한 플레이를 한 그에게 바로 퇴장 명령을 내린다.
골문 앞에서 우리의 프리킥 찬스다. 광장이 숨죽인다.
킥커로 나선 이천수가 공을 향해 달려가고 수십만이 숨죽인 정적 속에 황금의 만회골이 터진다.
일순 함성과 축포가 터지며 광장에 막혔던 물이 흐르는 느낌이다. 이제 열한 명과 열 명의 싸움이다. 다시 계속되는 공방 속에 안타깝게도 우리의 공격이 번번히 저들의 저지선에 막힌다.
선수들도 한 골이 간절하고 아쉽겠지만, 광장에서 지켜보는 우리도 선수들만큼 간절하다.
그러나 숱한 찬스 속에서도 열릴 듯 열릴 듯하며 열리지 않던 골이 후반전 30분쯤 안정환의 발끝에서 열린다. 그래, 이들은 지금 아드보카드의 전사지만 4년 전 히딩크의 전사들이었다. 어쩌면 역전승을 이루어내는 것까지 어제 호주와 일본의 경기와 똑 같을까.
더 많은 골을 넣으면 더 좋겠지만, 더 이상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프랑스와도 또 스위스와도 이렇게 싸워줄 것을 믿는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태극전사 만세. 대한민국 거리응원단 만세.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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