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험한 길을 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어려울 때일수록 웃으면서 살아가는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111년 간 우리 땅에서 사랑과 봉사의 삶을 실천해 온 유진 벨, 윌리엄 린튼 가문의 4대손 인요한(47)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생각의나무 발행)이라는 책을 냈다.
구한말 이 땅에 발을 디딘 선교사 벨과 린튼, 그리고 그 후손들의 한국에서의 삶은 사랑과 봉사, 그리고 희생의 역사다. “웬만한 전라도 사람보다 더 징한 전라도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인 소장도 그 길을 오롯이 따르고 있다. “한국인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그는 말한다.
“오메, 니가 개구장이 짠이냐?” 코흘리개 동무들과 어울려 양어장 잉어 구워 먹기, 여름 앵두서리, 가을 감서리, 자치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자칭 ‘순천 촌놈’이라는 그가 책에서 소개한 어린 시절은 이 땅의 여느 중년과 다름없다. 검정고무신을 신은 말썽꾼 존(John)을 동네에서는 ‘전라도 버전’으로 ‘짠이’라 불렀다. 인 소장은 “그게 더 좋았다. 어감이 재미있지 않은가, 짠이…”라고 회상한다.
현대사의 격랑도 함께 했다. 그는 연세대 의대에 갓 입학한 1980년 5월 광주로 달려가 시민군의 외신기자회견 통역을 맡았고, 그 바람에‘빨갱이’로 몰려 협박과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 국적이면서도 굳이 대학생 강제 군사교육인 문무대 입소를 자원했다. 이 땅에 머문 게 아니라 더불어 산 것이다. 의사가 된 뒤에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구급차와 응급의료 시스템을 들여왔고, 지금은 북한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책을 쓴 이유는 변해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한국은 많이 변했습니다. 잘 살게 됐지만 너무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어요. 옆에서 누가 죽든 말든 관심이 없어졌지요. 북한을 다녀보니 가난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아직 갖고 있더군요.”
그는 한국인들이“삶이 힘들어도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적이면서도 강단 있는 알짜배기” 모습을 되찾고, 서로 비판하고 비하하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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