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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가슴 찡한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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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가슴 찡한 이력서

입력
2006.06.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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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찡한 이력서'라는 애칭이 붙은 사진 한 장이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력서에 증명사진을 정성스럽게 붙이고 있는 두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이다. 눈에 번쩍 띄는 구석이 없어 그냥 스치고 지나갈 법한데도 이달 들어 인터넷 포탈의 최고 인기 검색어로 부상했다.

네티즌들의 유난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진에 잡힌 손과 증명사진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주름이 가득 팬 손가락을 보면 사진의 주인공이 족히 환갑은 넘었을 같은데 김경철 경제부장정작 이력서에 붙이고 있는 증명사진 얼굴은 40대 안팎의 모습이다.

정확한 속사정은 모른다. 네티즌들은 할아버지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간절한 심정에 젊은 시절 사진을 제출하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명예퇴직을 당한뒤 재취업을 하려고 무던히 애쓰던 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나이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애처롭다'는 등 동감을 표시하는 댓글이 많다.

남의 딱한 사정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고령화는 무섭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국가나 개인 모두 대책이 뾰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세월을 속여보려고 했던 그 할아버지는 자녀를 키우느라 모아둔 돈도 넉넉지 않고, 사회보장 체계가 미약해 그럴싸한 연금소득도 기대할 수 없는 터에 일자리마저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려야 하는 평균인의 모습으로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유있고 건강하게 노후를 맞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장수는 인류의 염원이 아니던가. 그러나 작금의 연령구성 변화는 사회경제적으로 쌍끌이 폭탄이나 다름없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젊은 피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데다 인구의 주력인 베이붐 세대의 나이가 지긋해지면 노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를 넘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은 노령인구는 지금의 9.1%에서 2030년에는 24.1%, 2050년에는 37.3%로 급증할 전망이다. 근로연령 인구 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현재의 '8 대 1 사회'도 2030년엔 '3 대 1 ', 2050년엔 '3 대 2'가 된다. 이쯤 되면 나라경제와 집안살림 모두 숨이 차 부양을 해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만큼 자력갱생을 해야 한다.

솔개 우화를 되새기는 중년이 늘어나고 있다. 태어나 40년이 되면 발톱과 부리, 깃털이 노화해 사냥을 할 수 없게 된 솔개 중 일부는 바위에 부리를 쪼아 새 부리를 돋아나게 하는 처절한 갱생과정을 통해 불사조처럼 거듭나 30년의 수명을 더 누린다는 이야기이다.

지난해 한 경영인이 쓴 이 우화를 황영기 우리은행장과 정상명 검찰총장이 조직혁신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소개한 이후 화제가 됐고, 올해에는 이모작 인생과 노후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금언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자연섭리에 어긋나는 우화가 회자되고 있는 것은 조기퇴직 위협에 시달리는 4050세대들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터이다.

정부가 얼마전 제1차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했다. 노인 45%에게 매달 8만원씩의 연금을 지급하고 정년도 연장하는 방안을 담고 있지만 기대만큼 쌈박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32조원에 달하는 재원 문제로 실효성마저 의심을 받고 있다. 솔개처럼 환골탈태한 최종안을 꿈꿔본다.

김경철 경제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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