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횡단보도 앞에 날치기를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오토바이를 이용한 날치기꾼이 찻길 가까이 선 사람들의 가방을 채가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범죄소설을 많이 본 탓인지 나는 경계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버스정류장에서 괜한 사람을 수상히 여기며 감시한다. 그가 나와 같은 버스를 타면, 게다가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기라도 하면 초비상이다. 그가 다른 길로 접어들어 멀리 떨어질 때까지 반드시 그의 뒤에서 걷는다.
그 웃기는 경계심의 덕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때는 정말 무심히 버스 안을 둘러봤는데 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청년은 비슥 웃으며 눈길을 돌렸다. 순진한 청년이구나 생각하며 나도 고개를 돌렸는데, 잠시 후 다시 그를 돌아보니 계속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싱거운 건지 호기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네, 갸웃거려졌지만 험한 인상이 아니어서 나는 계속 방심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며 혹시나 하고 뒤를 살피니 그도 내리는 것 아닌가. 뒤숭숭해 하며 1분쯤 걷다가 휙 돌아보자 그는 막 내 가방에 손을 대고 있었다. 놀랐을 거다. 기껏 손님이랍시고 골라 시간을 들였을 텐데 허탕치게 해서 좀 미안했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