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에도 얘기는 많았지만 실제 단속이 이뤄지지는 않았잖아요.“
9일 오후4시 서울 중계동의 A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부 김모(38)씨는 정부의 아파트 부녀회 가격 담합 단속 방침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와 만난 곳은 “평당 1,500만원 이하로는 절대 팔지 맙시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아파트 입구. 이 현수막은 지난 연말 인근 당현천의 복원 소속이 전해진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 걸려있다.
김씨는 “당현천 복원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 아파트도 제 가격을 받아야 한다는 데 부녀회의 의견이 모아졌다”며 현수막을 단 경위를 설명해줬다. 김씨는 “정부의 단속 방침이 알려진 이후에도 강남이나 신도시 등지의 집값 담합 움직임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느냐”며 “정부 방침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인 만큼 재산권 보호를 위해 강남 등을 흉내라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부녀회의 아파트 가격 담합이 정부의 규제 방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서울 강남과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 담합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서울 강북 지역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강북 지역은 그 동안 강남 등에 비해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턱없이 미미했던 터라 강남 등의 무차별적 아파트 가격 담합 소식에 발끈한 상황이다.
같은 날 찾아간 도봉구 쌍문동의 B아파트 단지에는 출입구마다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25평은 1억9,000만원, 33평은 2억6,000만원으로 중개업소에 가격을 제시하고 이미 내놓은 매물도 가격을 수정해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었다. 이 단지는 지난달 중순부터 아파트 가격을 평당 1,000만원으로 고수하자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으나 여론이 좋지 않자 며칠 전 철거했다. 서울 봉천동 C아파트도 2억7,000만원 정도에 시세가 형성돼 있던 33평형 아파트에 대해 최근 “3억5,000만~4억에 팔아라”라고 구체적 가격까지 명시한 공고문이 나붙어 있다.
그러나 강북 아파트 단지의 담합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강남이나 신도시에 비해 담합의 파괴력이 크지 않은 데다 중개업소에 대한 압박도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B아파트 단지 인근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25평 아파트 가격이 1억2,000만원선인데 1억9,000만원을 받겠다면 누가 사겠느냐”며 “현수막에 붙어있던 평당 1,000만원은 터무니없기 때문에 ‘담합 가격’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반면, 담합의 진원지인 강남과 수도권 신도시 지역의 담합 열풍은 정부의 단속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는 “아파트 부녀회가 주변 중개업소들에게 시세보다 3,000만~5,000만원 이상 비싸게 매물을 올리지 않을 경우 중개의뢰를 하지 않기로 주민들이 결의를 했으니 협조해 달라고 당부해왔다”고 전했다. 고양시 화정동의 H아파트는 동 대표와 주민들이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매가보다 40% 높은 시세를 요구해 인근 중개업소들이 어쩔 수 없이 호가를 상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본 신도시 일부 주민들도 심지어 인터넷에 아파트값 제값 받기 동호회 카페를 만들고 아파트 주민은 물론 인근 중개업소들에게 집값 담합을 종용하고 있다.
강북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강남 등에 자극을 받은 강북 아파트 단지들에서도 ‘제 가격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저가 거래가 성사된 중개업소는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정부가 담합 단속 방침이 엄포에 그친다면 담합 열풍이 전국으로 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