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의 전통적인 모양새는 32면체가 부풀어져 만들어진 구형이며, 흔히들 ‘벅민스터 풀러 공’이라고 부른다. 이 32면체는 12개의 정오각형과 20개의 정육각형으로 이루어지는데, 원리적으로 이 32면체는 정삼각형 20개로 이뤄진 정이십면체의 꼭지점 부분을 모서리 길이의 3분의 1이 되는 지점에서 깎아내 만든다. 정이십면체 꼭지점 12개에는 각각 정삼각형이 5개씩 모여 있으므로, 이런 식으로 깎아내면 새로이 정오각형 12개와 정육각형 20개가 생겨나게 된다.
전통적인 축구공 모양의 구조는 화학 세계에도 있다. 탄소 결정체 C60은 미국 건축가 벅민스터 풀러의 이름을 따서 ‘풀러렌’(fullerene)이라고도 부르는데 1985년에 발견되어 1996년에 발견자들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겨 주었다. 풀러렌은 탄소 원자 60개가 32면체의 60개 꼭지점 자리에 놓여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2006년 월드컵 공인구 ‘팀가이스트’는 14조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6개는 이엽 프로펠러 모양을 하고 있고 나머지 8개는 표창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프로펠러 모양의 6개 조각은 x, y, z 축 각각에 2개씩 서로 마주 보게 배치되어 있고 표창 모양의 8개 조각은 프로펠러 모양의 조각들 사이를 채우고 있다. 그림이 보여주듯이, 14개 조각이 이루고 있는 ‘팀가이스트’의 구조는 원리상 ‘깍인 정팔면체’(truncated octahedron)라고 불리는 십사면체와 같다.
이 십사면체는 정삼각형 8개로 이뤄진 정팔면체의 꼭지점 부분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정팔면체 꼭지점 6개 각각에는 정삼각형이 4개씩 모여 있으므로, 깍인 부분에 정4각형 6개가 새로이 생기고, 원래의 8개 정삼각형은 정육각형이 된다.
이 ‘깍인 정팔면체’ 정사각형의 부분에 프로펠러 모양의 조각이 배치된 것이고, 정육각형의 부분에 표창 모양의 조각이 배치됨으로써 여러 방향에서 안정적인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깍인 정팔면체’는, 정육면체 및 마름모 십이면체와 더불어, 이것들 자체만을 연속해서 쌓아서 3차원 유클리드 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다는 입체적 특성을 갖는 볼록 다면체이다.
이재현(이하 현) 안녕, 축구공아. 이번에 모양이 바뀌었구나. 보기에도 그럴 듯하고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고 대칭적이네.
축구공(이하 공) 헤헤, 조각 수가 줄어드니까 꼭지점 수도 줄어들고 모서리 이음매의 수와 총 길이도 줄어들었어. 꼭지점은 60개에서 24개로, 이음매 개수도 90개에서 36개로 줄었지. 이음매 부분의 총 길이도 무려 15% 정도나 줄었단다. 원리적으로, 완벽한 구형에 더 가깝게 된 거지.
현 프로펠러 모양의 조각이 사각형, 표창 모양의 조각이 육각형에 해당한다는 얘기는 단지 구조상의 비유에 그치는 것은 아니지?
공 팀가이스트를 꼼꼼히 살펴보면 프로펠러 모양의 조각에는 선과 선이 만나는 점이 4개가 있고 표창 모양의 조각에는 6개가 있어. 위상기하학적으로 각기 사각형과 육각형과 동상(同相)인 거야. 결국 새로운 공인구는 ‘깍인 정팔면체’가 부풀려져 생겨난 구인 거지.
현 아무튼 전통적인 모양새에 비해서 뾰족한 부분과 이음매가 줄어들고 구조가 더 안정적이고 대칭적인 덕분에, 공의 어디를 차서 압력을 가하든 간에 더 균질적이고 일정한 반응이 생겨나는 거겠네. 결국, 더 합리적이고 예상 가능한 볼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얘기고.
공 그렇지, 전통적인 축구공은 지금보다 더 불규칙적인 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14 조각을 단지 사각형, 육각형으로 하지 않고 프로펠러 모양과 표창 모양으로 한 것도 중요하고 묘미가 있는 대목이야.
현 단지 2개의 단위 패턴만을 이용해서 구의 곡면 전체를 분할해서는 결과적으로 여러 방향으로 대칭적으로 만드는 문제인데, 시각적 디자인이라는 면에서 볼 때도 보기 좋더구나. 프로펠러의 그래픽 이미지가 운동과 에너지를 뜻한다는 게 제조사의 설명이네.
공 나에게 필요한 성능은, 흔히들 속도, 반발력과 탄성, 회전력, 균질한 반응 등이라고 말하잖니? 이번에 이런 성능들이 더 좋아진 거지. 선수들은 더 정교하게 컨트롤할 수 있고, 또 원하는 지점에 볼을 더 정확하게 찰 수 있게 된 거지.
현 으음…이운재 선수한테는 불리한 거구나.
공 그런 것 말고도 좋은 점들이 또 있단다. 조각들을 열 접합 방식으로 붙였기 때문에 조각들을 꿰매는 전통적인 방식의 볼보다 방수가 더 잘 되는 거야. 또 볼의 표면을 찰 때도 더 부드럽고 일관된 반응을 하게 된단다.
현 그럼 스핀킥을 차는 게 더 쉬워졌니?
공 그건 일차적으로 선수가 볼을 찰 때의 최초 속도와 초당 회전수에 관련되는 문제야. 초당 10회 정도 회전을 하도록 스핀을 넣되 시속 105km에서 108km 정도의 속도로 찰 때에만 카를로스나 베컴처럼 멋들어지게 휘어찰 수 있는 거지. 처음 10m 정도는 직선처럼 날아가다가 갑자기 속도가 줄면서 확 휘어버리는 것 말야.
현 이번에 출전한 골키퍼들은 네가 더 가굅?빠른데다가 흔들리면서 날아온다고 불평을 하더구나.
공 탄성과 회전력이 더 좋아진 것 말고 외피의 재질에 관련된 건데, 이건 모든 골키퍼들에게 동일한 조건이니까…근데 원래 32조각으로 된 전통적인 방식의 벅민스터 풀러 공에는 오각형 부분이 검게 칠해져 있었던 거 기억나니?
현 응
공 그렇게 검게 칠한 건 일단 알록달록 해야만 멀리서도 축구공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로는 스핀킥을 차려는 선수가 볼 표면의 키킹 지점을 정확히 설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스핀킥은 무엇보다 선수의 힘과 기량이 문제라고 할 수 있지.
현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 공인구 제조사가 만든 홈페이지에 의하면 14조각으로 된 새 모델은 월드컵 본선 때만 쓰고, 토너먼트용이나 연습용은 디자인 무늬만 프로펠러 모양을 했을 뿐 축구공 외피는 여전히 전통적으로 32조각을 꿰맨 벅민스터 풀러 공 스타일이더구나. 그건 왜 그렇지? 새 모델이 여러 가지 면에서 성능이 좋으면 언제 어디서나 새 모델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
공 그건 가격 차이도 있겠고…또…(끄응) 뭐, 알고 보면 간단한 얘기야. 경제적으로 볼 때, 제조사로서는 벅민스터 풀러 공을 위한 기존 생산라인을 해체해버릴 수가 없었겠지. 그리고 그 라인에서 작업을 하던 숙련 노동자들도 있고 하니까 말이야.
현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을 만들면 적게는 수백 번 많게는 천 몇백 번인가를 꿰매야 한다지? 그리고 숙련된 노동자가 하루 8시간 내내 일해도 하루에 2-3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하고.
공 나로서도 딜레마야. 3시간에 60센트의 노임을 준다는 꿰매는 방식의 생산은 제3세계 아동 노동 착취라고 비난을 받아 왔고, 반면에 열 접합 방식의 ‘더 인도주의적인 이노베이션’은 그나마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니까 말이야.
현 축구공을 생산하는 지역은 인도, 파키스탄, 모로코 등인데 세계 축구공의 60%가 파키스탄 동북부의 시알코트(Sialkot) 지역에서 생산된다던데.
공 응. 그 지역은 옛날부터 카펫 생산지로 유명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손재주가 좋은데다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영국인들이 쓰던 축구, 크리켓, 테니스 용품을 생산, 수리해주던 곳이야. 무엇보다 저임금이 생산 자본 쪽에게는 매력이고.
현 으음…그러고 보면, 토고 팀 전력에 비해서 토고의 역사나 사회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거의 아는 게 없네. 언론들도 별로 관심이 없고 말이야.
공 토고는 우리가 평가전을 치룬 가나의 바로 오른편에 있는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지. 원래 1884년에 독일의 보호령으로 전락했다가 1919년에 영국은 서쪽 3분의 1을, 프랑스는 동쪽 3분의 2를 차지했어. 1956년에 영국은 자기네 지배하의 토고 땅을 가나에 병합했고, 1960년에 프랑스 지배로부터 나머지 지역이 독립해서 공화국이 되었지. 탈식민지적 상황에서 종족간의 다툼이 격화되어 심각한 무장 분쟁이 있었고, 장기간의 독재 때문에 국민들이 매우 힘들게 살고 있는 나라야.
현 우리나라가 토고를 이겨서 16강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가 잘 몰랐던 토고나 아프리카 일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냐?
공 나도 둥글고 지구도 둥글지. 나, 즉 축구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월드컵 시즌 동안은 전지구적 상호연관의 정치적, 문화적 상징인 셈이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열광해서 이 축제를 즐기되 파쇼적이고 쇼비니스틱한 광기에는 빠지지 않는 거야.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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