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시중 부동자금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뭉칫돈들이 단기적 이익을 좇아 몰려다니는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져 ‘자산 왜곡’ 현상도 우려되고 있다.
넘쳐나는 여윳돈 아노미 상태
400조원을 넘는 시중 부동자금은 최근 증시와 부동산 시장 모두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투자 방향성을 잃은 채 아노미 상태에 빠진 모습이다.
코스피 지수가 지난달 초에 비해 230포인트 가량 폭락한데다, 부동산 시장은 보유세 증가와 정부의 잇단 거품 경고 등으로 찬바람이 분 상황에서 최근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상까지 겹쳐 자금 탈출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요구불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6개월미만 정기예금 등 금융기관 단기수신은 5월말 기준 443조1,000억원에 이르는 상태.
특히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초단기 대기성 자금의 집결지인 MMF의 수탁고가 폭발적으로 늘어, 4월말 72조2,800억원이던 수탁고는 8일 78조2,750억원으로 40일 남짓한 사이에 6조원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월평균 증가액 4,000억원과 비교할 수 없는 증가세로 코스피 지수가 폭락한 7일 하루 동안에만 1조4,000여억원이 늘어나기도 했다.
국민은행 압구정동 PB센터 백승화 팀장은 “다주택보유자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매물을 내놓고 있어 하반기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며 “증시도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어 고객들이 MMF에 넣어두고 판세를 관망중”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보고 있지만, 해외 증시도 동반 추락하고 있는데다 해외 부동산도 가격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투자 문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탐색중인 상태로 실제 거래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뭉칫돈의 게릴라식 투자 현상 심화
문제는 이 같은 시중 자금의 부동화로 인해 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증시가 올 들어 조정을 거듭하면서 부동 자금들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도는 곳이면 단기적 이익을 좇아 일시에 치고 빠지는 일들이 반복돼 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중시켰다.
골프회원권의 경우 올들어 한달새 1억원 가까이 오르는 등 4월까지 급등하다 최근 폭락세로 돌아섰다. 금도 지난달 국제 금값이 26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국내에서도 ‘금테크’가 유행했지만 국제 금값이 최근 14% 이상 떨어지면서 급격히 찬바람을 맞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 시장이나 선박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실물펀드 등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부동 자금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근본 이유는 결국 기업들이 시중의 남아도는 돈을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91~96년 11.1%였던 연평균 설비 투자 증가율이 2001~2005년에는 1.1%에 불과했다.
산은경제연구소 송정환 소장은 “기업이 투자를 위해 가계의 여유 자금을 끌어쓰는 것이 정상적인 자금순환이지만, 지금은 기업들도 돈이 넘치기 때문에 자금이 떠도는 것”이라며 “기업 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자산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투자 흐름이 수익성보다 안정성 위주로 변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은행들이 최근 금리를 조금 올린 5%대 특판예금을 내놓자마자 8조원대의 자금이 몰린 것도 이를 반영한다.
우리은행 강남PB센터 박승안 팀장은 “투자의 큰 축 자체가 안정성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이지만, 은행 이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금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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