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업 준비생 송은상(29)씨는 네이버 마니아다. 뉴스 및 자료 검색, 이메일, 카페, 블로그뿐만 아니라 쇼핑도 네이버에서 해결한다. 2년 전만 해도 초창기 인터넷 세대의 놀이터였던 ‘딴지일보’, ‘디시인사이드’ 등의 사이트를 자주 찾았으나 지금은 발길을 뚝 끊었다. 굳이 이런 사이트를 찾지 않더라도 네티즌들이 재미 있는 콘텐츠를 네이버에 재빠르게 퍼 나르기 때문이다. 송씨는 “언제부터인지 컴퓨터만 키면 항상 네이버를 찾는다”며 “네이버가 제6의 감각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2. 인터넷 콘텐츠업체 미디어몹 이승철 사장은 최근 네이버를 검색하다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제작한 동영상 콘텐츠 ‘헤딩라인 뉴스’가 버젓이 다른 업체의 제작물로 둔갑돼 네이버에 제공됐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잠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낼까 생각했지만, 변호사가 극구 말리는데다 ‘2~3년씩 지리한 법적공방을 벌여봐야 얻을 게 별로 없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포기했다. 이 사장은 “이런 상황이 예상됐다면 차라리 포털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가져가려고 했을 때 못 이기는 척 넘겨줄 걸 그랬다”며 혀를 찼다.
대형 포털의 독점이 갈수록 강화되면서 중소 콘텐츠 업체들이 ‘식물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포털이 단순 검색뿐만 아니라 이메일, 블로그, 카페, 뉴스, 쇼핑몰 등 모든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터넷의 블랙홀’이 되면서 중소 콘텐츠 업체가 고사위기에 놓인 것이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인터넷사이트 조사업체 코리안 클릭의 방문자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네이버와 다음의 도달률(국내 인터넷 사용인구 대비 해당 사이트 방문자 비율)은 각각 94.9%와 90.0%에 달했다. 네티즌 10명 중 9명 이상이 이들 사이트를 찾았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인터넷=포털’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셈이다. 이들의 독주는 온라인 광고시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해 온라인 검색시장 점유율 68.72%를 토대로 전체 검색광고시장(3,200억원)의 절반 이상(1,705억원)을 장악했다. 반면 중소 콘텐츠 업체들의 위상은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
인터넷 조사업체 랭키닷컴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풍자적인 인터뷰 기사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딴지일보는 월 평균 방문자 수가 2003년 3월 106위에서 3년 만에 625위로 추락했다. 컴퓨터 하드웨어 정보제공업체 K벤치(88위→247위)와 미디어몹(363위→537위), 오마이뉴스(38위→96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디어몹 이승철 사장은 “방문 순위 100위 아래 업체에는 광고가 거의 붙지 않는다”며 “중소 콘텐츠 업체들은 산소 호흡기를 꽂고 생명만 유지하는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라고 털어놓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 콘텐츠 업체들은 페이지뷰 감소→ 광고 및 매출 감소→ 인력구조 조정→ 콘텐츠 부실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일부는 경영권을 넘기거나 고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 포털에 기생하기도 한다.
실제 K벤치는 지난해 30여명의 인력을 구조조정 한 뒤 출판사인 시공사로 경영권을 넘겼고, 미디어몹은 방송국 제작인력 10명을 전원 해고했다. 또 디시인사이드와 유머사이트인 웃긴대학은 각각 야후와 엠파스에서 서버와 회선을 제공받는 대가로 광고 수주의 척도인 트래픽을 이들 업체에 넘겨주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사장은 “일부 대형 포털은 홍보효과 운운하며 공들여 만든 콘텐츠를 공짜로 요구하기도 한다”며 “자본력을 앞세워 네티즌을 끌어들이는 포털에 당해 낼 재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포털 독점의 폐해를 줄이려면 오프라인에서처럼 독점규제 법규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며 “포털도 네티즌을 자기 사이트에만 최대한 묶어 둘 게 아니라 원하는 사이트로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 news@hk.co.kr유병률ㆍ안형영기자, 사진부= 손용석기자
■ 딥링크 아닌 DB방식이 콘텐츠산업 양극화 주범
'상생을 가로 막는 건 DB화 전략이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들은 검색결과를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연결해주는 ‘딥링크’가 아닌 포털 자체 서버에서 보여주는 ‘DB’ 방식이 콘텐츠 산업 양극화의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한글 웹페이지가 워낙 빈약했던 서비스 초창기에는 포털이 직접 정보를 생산해 축적하는 방식이 인터넷 발전에 도움을 줬지만, 요즘엔 네티즌의 공짜문화를 등에 업고 중소 콘텐츠 업체의 하청화만 부추긴다는 얘기다. 웃긴대학 이정민 사장은 “네이버가 유머서비스 ‘붐’을 개설할 당시, 콘텐츠의 80%가 웃긴대학에서 퍼 간 것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소 콘텐츠 업체의 선택은 ‘자존심 지키며 망하느냐’, ‘싼값에 공급하느냐’ 둘 중 하나”라고 토로했다.
뉴스 제공 사이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 디지털 포럼에 참가한 뉴욕타임스 니센홀츠 부사장이 “미국 포털은 기사 전체가 아니라 헤드라인만 제공하고 있어 신문과 포털이 공존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선 통하지 않는 얘기다. 신문업계 관계자는 “매달 100억원을 들여 만든 콘텐츠를 3,000만~5,000만원의 헐값에 팔아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포털 중심의 산업 재편은 콘텐츠의 질 저하는 물론, 인터넷을 기성매체의 판박이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경희사이버대 민경배(NGO학과) 교수는 “인터넷의 기본정신은 기성에 대한 발랄한 저항이었는데, 대형 포털이 개성이 거세된 콘텐츠를 주로 실으면서 스스로 대중매체화하고 있다”며 “포털들은 선정적인 정보를 주로 노출시켜 이윤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견제와 감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 포털에는 진짜 정보가 없다?
‘눈요기만 난무하고, 제대로 된 자료는 없으며, 연결 안 되는 웹페이지는 왜 그리 많은지‥ ’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인터넷 정보의 현주소다.
요즘 ‘외국인 근로자 대책’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인 이승훈(29)씨는 한 포털 사이트에서 참고 자료를 검색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우리나라 포털에 축적된 지식이라곤 연예인과 관련된 잡동사니 뉴스뿐”이라며 “쓸만한 논문 자료가 거의 없어 국내 각 기관을 직접 찾아 다니거나 해외 포털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활용이 양적으론 급속히 팽창했지만, 이를 통해 소통되는 정보의 질은 너무도 열악하다.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웹사이트(서버) 수(2002년 기준)는 11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8위에 불과하다. 일본(2.9개)보다는 높지만 독일(84.7개), 영국(64.2개), 미국(63.7개) 등에 비해선 턱없이 낮다. 인구 1,000명 당 웹페이지 수 또한 0.2개로 최하위권(22위)이다.
반면 네티즌들이 경쟁적으로 퍼 나르는 질 낮은 미확인 정보들만 확대ㆍ재생산돼 지식의 확산과 축적은커녕 오히려 정보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법률 의학 등 전문 분야의 통제되지 않은 정보들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은행원 김모(45)씨는 “모 포털의 지식검색 서비스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증상을 올렸는데, 과로하면 나타날 수 있는 단순 증상이라는 답변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큰 일 날 뻔했다”면서 “잘못된 의학 정보들이 인터넷에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 기획자 박모(43)씨는 “우리 검색 포털에선 대학생 리포트 이상의 자료를 찾아 볼 수 없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지식 경쟁력이 크게 낙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기에는 포털의 책임이 크다.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핵심 포털 업체들이 다른 사이트와는 소통이 불가능한 폐쇄적인 DB 방식을 고집하는 탓에 자료 서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미국의 경우 전국의 지방 경찰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작성된 ‘인종적 편견이 수사기관의 기소율에 영향 미친다’는 기사가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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