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장점이 많은 나라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야스쿠니(靖國) 신사 문제 등으로 화가 나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가장 부러운 것은 ‘법과 질서를 지켜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은 좋아하는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도 새치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관계자들이 마련한 새치기 방지 대책을 신뢰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라이브도어, 록히드 사건의 경우
최근 도쿄지검 특수부가 시대의 총아로 각광받던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ㆍ34)와 무라카미 요시아키(村上世彰ㆍ47)씨에게 철퇴를 내린 것도 국가적인 ‘새치기 방지대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대학을 중퇴한 후 600만엔을 투자해 만든 인터넷회사 라이브도어를 한때 7,300억엔 규모의 대그룹으로 키웠던 ‘연금술사’ 호리에씨. 엘리트 관료집단인 통상산업성을 박차고 나와 무라카미펀드를 설립하고, 손 대는 주식마다 대박을 터뜨린 ‘신의 손’ 무라카미씨.
미국식 능력우선주의와 시장원리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개혁의 선구자를 자임하는 화려한 언행으로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일본 경제계와 기업에 미친 영향도 막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승승장구는 또 다른 측면에서 불안과 혼란을 초래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금전만능주의와 법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비(非) 일본적’경영수법에 대해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쿄지검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정의의 사도’를 자부하는 특수부는 이례적으로 직접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이들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사람들은 시대의 풍운아가 범죄자로 전락하자 “역시 그렇지?”라고 반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을 어기면 누구든 처벌받는다’는 명제를 재확인하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특수부는 과거에도 중요한 순간에 꼭 등장했다. 유명한 록히드 사건(1976년)에서 서슬이 퍼렇던 당시 권력자 다나카 가쿠에이(中田角榮) 총리를 수뢰죄로 단죄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후 일본 경제의 발전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준 특수부 덕분”이라는 일본인들의 평가가 인상적이다.
●‘새치기 방지’에 대한 신뢰
물론 일본이 완벽한 사회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나름대로의 고민과 한계를 갖고 있다. 특수부도 전지전능한 조직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나라가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 중심을 잡아주는 조직들이 살아 있고, 이를 전적으로 신뢰해주는 국민이 있다는 점이 부럽기 그지없다.
연이은 시행착오로 총체적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볼 때 더욱 그렇다. 지금은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기 위해서, 무너진 교육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절실한 마음으로 생각해야 할 때다. 그 첫걸음은 법을 준수해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당연한 믿음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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