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와 공존이라는 인류의 소망을 조롱하듯, 21세기에 들어서도 증오와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세계는 한 지식인을 떠올린다. 서구의 일방주의를 비판하고동서양의 교류와 소통을 강조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는 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이드의 삶과 학문 세계이다.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사이드로부터 배운 김성곤 서울대 교수 등 영문학 교수 11명이 저자다. 평전의 성격도 지니고 있어 생애와 철학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지만 아랍인과 유대인의 전쟁으로 이집트 카이로로 쫓겨났다. 그곳에서 명문가 자제만 들어가는 학교에 다녔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다. 그 사이 가족은 카이로에서 레바논으로 이주했고 최종적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그는, 에드워드라는 영국식 이름과, 사이드라는 아랍식 성의 조합이 상징하듯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다. 사이드는“미국인과 함께 있어도, 아랍인과 함께 있어도 언제나 불완전함을 느꼈다”면서 망명객을 자처했다.
이런 자의식은 그를 특권의 바깥, 안락한 삶의 외부로 끌어내 소외되고 박탈당한 이웃을 옹호하고 동양인과 식민지인, 소수 인종과 제3세계인에게 관심을 갖도록 했다.
탈식민 연구라는 새로운 영역을 연 영문학교수, 아시아의 대표 지성, 행동하는 지식인사이드가 세계 지성사에 충격을 준 명저‘오리엔탈리즘’(1978)에서 꾸짖은 것은 서구의 편견이었다. 서구는 식민지인을 자신과 다른‘타자’(他者^the other)로 취급했고, ‘차이’(difference)를 우열로 보았다. 그 바탕에는 서구인은 우월한 문명인인 반면 비서구인은 열등하고 미개하다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야만적이고 열등한 비서구의 계몽과 교화가서구의사명이고, 따라서 서구제국주의는 식민지인을 근대화,문명화하는 과정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사이드는 적대적이고 차별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상호관계를 이루자고 주장한다. 특히 문명과 문화가겹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해와 화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에 정착한 그가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한 것은 67년 중동전에서 아랍이 패하면서부터이다. 그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대변인이자 시인인 사촌 카말 나시르가 이스라엘의 테러로 살해되자 팔레스타인 민족운
동에 참여한다. 그러면서도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테러에는 반대했다.
말년에 백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9^11 사태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테러와 그것에 대응하는 미국의 국가 테러를 동시에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이드는 고향을 잃었다는 자각 때문에 죽을 때까지 한 평의 땅도 갖지 않았다. 고향이 없는 그에게 집이란 의미 없는 공간이며, 만일 자기만의 집을 가진다면 그것은 곧 누군가를 노숙자로 만드는 일라고 생각했다.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은 사이드의 이론을 차용, 오리엔탈리즘의 덫에 걸린 우리사회를 겨냥한다. 저자는 파리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파리 외교전략연구원과 런던정경대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서구제국주의의지배 이데올로기인 오리엔탈리즘이 유럽, 미국,일본을 지나 우리 사회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오리엔탈리스트는자신만이 인권과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는 이성의 소유자이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는배제해야 할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책이 규정하는 오리엔탈리스트는 미국의네오콘, 일본의 신우익, 우리나라의 극우 지식인이다. 극우 성향의 교수, 언론인, ‘386 전향자’, 종교인 등에 대해서는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다. 그리고 사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차이를 인정하자고 제안하면서 프란츠 파농의 글을 인용한다. “타자를 만지고, 타자를 느끼며,동시에 그 타자를 내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왜 그대는 하지 않는가.”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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