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감사결과는 다른 어떤 공기업의 경우보다도 놀랍고 실망스럽다. 정부의 지원으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과 모럴 해저드는 숱하게 지적됐지만 그래도 EBS는 다를 것으로 인식돼 왔다.
국가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다른 공영·상업방송들과 차별되는 질 높은 교양·교육프로그램들을 통해 국민의 각별한 사랑과 신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EBS의 폭리와 수익금 사용실태는 그 믿음을 근본적으로 허무는 것이다.
EBS가 제조원가의 5배 값에 팔아 온 문제의 대입수능교재는 정부가 수능시험과의 연계성을 높이도록 함에 따라 수험생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비중을 갖게 된 책이다. 비싼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 되는 어려운 학생들의 의존도가 더 높은 이 교재를 폭리 대상으로 삼은 행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뿐만 아니다. 수익금을 온통 제 식구 배 불리는 데로 돌려 여타 정부투자기관의 3배가 넘는 비율로 임금을 올려왔는가 하면, 성과급이나 격려금 따위의 명목으로 마구 나누어 쓰고, 그도 모자라 퇴직금 누진제 폐지 보상금조로 50여억원을 더 나누려 했다. 정작 가장 큰 역점을 두어야 할 교육인프라 확충 등 본연의 공익적 용도에 쓴 돈은 수익금의 고작 3.5%였다. 공기업들의 가장 부도덕한 운영실태를 고스란히 답습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EBS는 초기의 순수한 교육적 성격이 변질되면서 점차 상업방송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비리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경영 합리화와 수익사업을 통해 독립경영기반을 갖추는 것 또한 공기업의 책무이긴 하지만 그 수익이 이처럼 공익이 아닌 사익에 돌려진다면 굳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공기업으로 존립할 이유도 없다. 정부와 방송위원회는 당연히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EBS도 사과문에서 밝혔듯 뼈를 깎는 노력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전념하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